[스페셜1]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4]
2006-08-21
글 : 오정연
촬영·사운드·조명·미술·무술 스탭이 이제야 고백하는 악몽의 현장들

A가 맘에 들면 B가 문제고, B가 해결되면 C가 불안하다. 영화를 찍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세트와 달리 100% 완벽한 로케이션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작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장소를 찾기까지의 모든 어려움은 무의미해져버린다.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잠복해 있기에 로케이션 촬영은 스탭들에게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받는 계기가 되게 마련. 그러나 힘든 도전일수록 성취한 뒤의 기쁨도 크다. 각 부문 스탭들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악몽의 촬영장소와 이를 극복한 후일담을 청해 들었다. 한여름의 하수구에서 한겨울의 유원지까지, 가장 자연스러운 화면 속에 감춰져 있어 더욱 의미심장한 눈물의 로케이션 이야기.

촬영: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엔 큰 제약이 따르게 마련”

한강의 하수구/ <괴물>
-김형구(<비트> <아름다운 시절> <봄날은 간다> <역도산> <극장전> 등)

“<괴물> 하면 떠오르는 건 하수구 촬영이다. 영화 속에서 괴물의 은신처를 제외한 모든 하수구 장면은 실제 하수구에서 찍었다. 하수구에 여름에도 들어가보고 겨울에도 들어가봤지만 가장 힘들었던 계절은 여름이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냄새겠지만 모기를 비롯한 온갖 정체불명의 생명체들도 문제였다. 스탭들이 모두 예방주사를 맞고 촬영에 임했는데 괴물영화를 찍다보니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들더라. 오랫동안 하수가 흐르던 곳이니까 바닥도 미끌미끌하고. 원하는 무빙을 만들 수 없다는 것도 큰 제약이었다. 물살이 워낙 세서, 카메라 이동을 위해 레일을 깔면 레일이 다 떠내려갈 지경이었으니까. 크레인으로 수직이동을 하기 위해 레일을 썼던 한컷을 제외하고 하수구 안에서는 모두 스테디캠으로 이동숏을 찍었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웃음)”

대구의 여관들/ <거짓말>
-김우형(<해피엔드>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 <그 놈 목소리> 등)

“영화 속에 여관이 열 몇 군데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세트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술팀에서 세트로 갈 경우 티가 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다. 결국 실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동대구역 주변의 여관을 헌팅해서 전부 로케이션 촬영을 해야 했다. 정말이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게 생긴, 곰팡이가 핀 방들만 골라서 돌아다녔는데 절대적인 공간이 좁아서 카메라를 세울 만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어떻게 조명을 해볼 도리도 없었다. 여관방이라는 게 워낙 비슷비슷하니까 그래도 구분이 가게 분위기를 바꾸려면 조명으로 커버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사운드: “시끄럽고 복잡한 곳에서는 순발력이 관건”

부산CGV 입구/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은희수(<집으로…> <청연> <오래된 정원> <무림여대생> 등)

“곽재용 감독님은 워낙 타협없이 복잡한 곳을 촬영지로 택하기 때문에 동시녹음하기가 유난히 힘들다. 부산CGV 건물 입구에서 경진(전지현)이 꼬마애들에게 용돈을 주는 장면을 찍었는데 바로 앞이 왕복 8차선 도로에 해운대역에서 이어지는 철길이 있다. 게다가 바로 앞 가게는 하필이면 영화 찍는 날 개업이벤트를 하고…. 아무튼 동시녹음기사로 일한 이래 가장 황당했던 장소다. (웃음) 거기에 배우는 전지현이니 촬영을 구경하는 인파까지 엄청났다. 그래도 다행히 카메라 앵글이 넓지 않아서 마이크를 인물 가까이까지 들이대지 않아도 됐고, 빨간 불에 자동차들이 정지했을 때를 틈타 촬영에 임한 결과 별도의 후시녹음 없이 모든 대사를 동시녹음 소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곽재용 감독님도 본인의 현장이 워낙 통제가 힘들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ADR(후시녹음)을 꼭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선지 사운드 NG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조명: “장면마다 서로 다른 조명을 설치해야 실사 느낌 완성”

부산 초량동과 연산동 일대/ <사생결단>
-임재영(<불새> <접속> <정사> <텔미썸딩>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등)

“도 경장과 이상도의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빠른 몽타주 편집으로 순식간에 보여주는 영화의 도입부가 기억에 남는다. 실제 부산의 번화가에서 찍었는데 그곳의 느낌을 영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사전에 논의할 때는 부패한 마약 세계를 비주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컬러를 보여주되 너무 어둡고 칙칙하지 않게, 잡다한 색이 관객의 눈에 크게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원래 그런 번화가에는 네온사인이 화려하지만 영화를 찍을 때는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일반적인 네온사인은 필름에 찍히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에 장면마다 서로 다른 톤과 색깔의 조명을 설치해서 인물의 피부에 닿는 네온을 연출해야 했다. 나이트클럽 같은 내부는 물론이고 골목길도 공간이 좁은 편이어서 정교한 조명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컷이지만 촬영은 며칠 밤을 새우면서 장편영화 한편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런 장면은 촬영할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원하는 대로 나왔을 때 기쁨은 더욱 크다.”

미술: “손을 댄 느낌이 안 들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강원도 문막 간현유원지/ <구타유발자들>
-장춘섭(<마지막 늑대> <신부수업> <가발> 등)

“가장 힘든 장면이 자연 그대로를 재현할 때다. 계절이나 날씨처럼 자연적인 요소는 어떻게 통제가 안 되니까. 그런데 <구타유발자들>은 영화 자체가 100% 자연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다 배경이 되는 시간이 늦가을의 어떤 하루였다. 그런데 촬영은 유난히 눈이 많은 겨울에 진행됐으니…. 매번 눈을 치우는 거야 모든 스탭의 할 일이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을 듯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는 장소의 조건이었다. 강변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던 걸 걷어내고 모래를 깔아서 부드러운 톤으로 바꾼 것은 그 때문이었다. 초겨울의 무채색이라는 컬러 컨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원래 그곳에 있던 화장실 등 현대적인 느낌의 조형물들을 모두 오래된 창고처럼 설정해서 외관을 바꿔야 했다. 자연 로케이션 촬영에서 미술의 관건은 자연스러움을 눈에 띄지 않게 첨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미술이 한 게 뭐냐’는 말을 들으면 정말 억울하다. 같은 미술하는 사람들끼리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웃음)”

무술: “한 테이크로 성공해야 하는 카스턴트”

판암IC 부근 터널/ <범죄의 재구성>
-전문식(<투 가이즈> <형사 Duelist> <천군> 등)

“대전통영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인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자동차 전복신을 찍은 곳이다. 창혁(박신양)의 자동차가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뒤집혀서 미끄러지다가 도로의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이었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영화 속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위험이 있었다. 차가 뒤집혀서 20m 정도를 점프해서 거꾸로 떨어지는, 당시 국내에서는 최고난이도에 속하는 카스턴트 장면이었는데, 그렇게 뒤집힌 채 몇 미터만 더 미끄러져도 경부고속도로의 폐쇄된 다리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건데 한 테이크 만에 성공시켜야 하는 힘들고 위험한 상황이라 직접 스턴트를 했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기는 하지만 스턴트를 하다가 차가 밀리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여러 종류의 액션을 소화하려다보면 공간 크기며 바닥 상황 등 무술팀이 로케이션과 관련해서 신경쓸 것이 많고 그런 경우 대부분은 미술부나 연출부에서 우리의 제안을 들어주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는 로케이션을 바꿔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장소를 추천한 게 바로 나였으니까. (웃음) 터널의 조건이나 이후의 도로 상황을 볼 때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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