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8]
2006-08-21
글 : 박혜명
지역 영상위가 추천하는 미개척 로케이션지

더는 밟을 땅이 없어 보여도, 아직 한국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미개척의 로케이션지는 전국 곳곳에 있다. 국내 총 7개 지역 영상위원회 가운데 부산, 전주, 광주, 남도, 경기 등 5곳의 영상위원회 로케이션팀으로부터 카메라맨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은 명소를 소개받았다.

“어둡게도, 밝게도 표현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

부산영상위원회가 추천한 동아대 벙커

전쟁시 대피장소로 쓰이는 벙커가 대학교 내에 떡하니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하다. 동아대 캠퍼스 내 지하 벙커는 현재 미대생들의 동아리 활동장소. 그라피티 같은 벽화들은 미대생들의 솜씨다. 이곳은 2년 전 동아대의 소개로 발굴됐다.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장소다. 조폭들의 아지트로도 볼 수 있지만 <다세포 소녀>의 학생들처럼 독특한 인물들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으로 쓸 수도 있다. 어두운 공간일 수도 있고, 밝고 재밌는 공간일 수도 있고. 어느 쪽으로 쓰느냐가 미술작업을 통해 충분히 변형 가능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이경섭 로케이션팀장은 이곳 벙커의 길이가 그닥 길지는 않다면서, 액션·스릴러물보다는 일상적인 휴먼드라마나 코미디물에서 아담하게 쓰이기에 좀더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그리기 힘든 독특한 한식 건물”

전주영상위원회가 추천한 군산 개정동 이영춘 가옥

일제 시대 쌀 수출항이었던 군산은 적산가옥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의학박사 1호인 이영춘(1903∼80) 박사의 가옥은 “군산에 처음 별장식으로 건립된, 당시 신식 건물”이라고 이세리 로케이션팀장은 소개한다. 2003년 시도유형문화재 200호로 등록된 이영춘 가옥은 보존 상태도 매우 좋다. 프랑스인이 설계한 집의 구조를 보면 방은 일식 다다미, 거실은 서구식 응접실을 본떠 지어졌고 관리인 방은 온돌식이다. “집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반 한식 건물이 아니”라고 하는 이영춘 가옥은 주변이 주택가가 아니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딴 곳의 느낌도 강하다고. 드라마 <모래시계>에 잠깐 등장했고 영화 촬영지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비밀을 간직한 듯한 고풍스러운 수도원”

광주영상위원회가 추천하는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건물 정문은 고등학교 교정처럼 풋풋하고, 담쟁이 넝쿨이 건물 한벽을 올라선 교정은 고풍스러운 수도원을 닮았다. 고목과 꽃들로 조경이 잘된 정원은 작은 공원이다.” 상무동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이 가진 다양한 느낌을 이재영 로케이션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캠퍼스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Y자와 ㄱ자가 뒤섞인 듯 건물 형태가 독특함도 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데는 터널식 지하복도다. 너비는 두 사람 정도 겨우 나란히 뛰어갈 정도로 좁고 양쪽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군데군데 달린 오렌지색 전등 때문에 느낌이 더 오묘하다고. 품속에 비밀이라도 안은 듯한 이 장소는 의외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숙박시설 밀집지역인 상무지구와 식당, 각종 가게들이 인접해 있어 편의성이 높다는 것도 큰 장점.

“밀수범을 잡는 내용이라면 OK!”

남도영상위원회가 추천하는 광양만 컨테이너 부두항

이곳은 남도영상위원회가 출범할 당시(2003년)부터 촬영지로 접촉을 시도해왔던 곳이다. 컨테이너 부두항은 광양 외에도 인천, 포항, 군산, 울산, 당진 등 여러 곳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안상 촬영허가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상당수의 영화가 컨테이너 부두항이 아닌 중간 하역장에서 촬영해왔다.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쪽과 얘기가 잘됐다. 영화가 내용상 문제가 없으면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로케이션팀 임재성씨에 따르면 공단쪽이 우려해온 보안상의 가장 큰 문제는 밀수. 항구 구조가 영화에 노출되면 밀수범들에게는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이 밀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밀수범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끝난다고 하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테니 그쪽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거다. (웃음)

“논개가 몸 던진 촉석루 같은 백색 기암절벽의 매력적 자태”

경기영상위원회가 추천하는 포천 기지리 폐석산

“논개가 몸을 던진 촉석루 앞 절벽 같지 않나.” 로케이션팀 이보영씨는 한때 채석장이었던 이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새하얀 돌산의 표면이 수묵화의 힘찬 붓터치를 연상시킨다. 실은 지난해 겨울, <한반도> 제작진이 이곳에 청와대 세트를 지으려다 계획이 좌절됐는데, 이유는 문화공원 ‘아트밸리’ 공사 시작일정과 세트공사 일정이 맞지 않아서다. 포천시는 이곳에 2007년 말까지 호수와 절벽 등 자연풍광을 최대한 보존한 조각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공사는 진행 중이나 촬영허가를 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소음이 약간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푸른 호수와 백색 기암절벽이 이루는 풍광이 꽤나 유혹적인 것도 사실.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동시에 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