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6]
2006-08-21
글 : 오정연
위험백배, 노력만배 해외 로케이션에서 생긴 일

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 촬영·합작 등 근 몇년간 새로운 시도는 줄을 이었다. 그 어떤 비상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이 가능한 국내 로케이션 촬영도 끝내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고생하게 마련인데 기후도, 음식도, 사람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의 어려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옛말 틀린 거 하나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설정 때문에 충무로의 많은 영화들이 해외로 발을 옮겼다.

<알포인트> 캄보디아 현지 고사날

좁디좁은 한반도에서도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찾는 게 어려운 상황이니, 이국 땅에서의 로케이션 헌팅은 그 몇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인프라가 전무한 캄보디아 현지에서 그 어떤 실질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체 로케이션 헌팅을 진행했던 <알포인트> 제작진은 6개월 동안 캄보디아 곳곳을 뒤졌다. 믿을 것은 열혈 연출부와 막강 제작부뿐이었다. 미처 개발되지 않은 사원이기에, 전염병이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현지인들의 경고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워낙 낙후된 곳들을 돌아다니다보니 하루에 한곳을 확인하면 해가 지는 상황. 총 네개조를 2인1조로 구성하여 주(州)별로 살폈다. <알포인트>의 최강혁 PD는 당시, 농담 조금 보태 캄보디아 로케이션 관련 책자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정보를 수집한 셈이라고 전한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장소를 확보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2개국 이상의 스탭들이 어울리는 현장의 번거로움은 때로 프로덕션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청연>의 이진구 조감독은 비행대회 장면을 촬영할 당시, 서로 다른 3개 국어를 구사하는 700, 800명의 엑스트라를 지휘하기 위해 세명의 통역을 대동해야 했다. 물론 상황이 급하고 사연이 간단할 때는, 부딪히며 익힌 영어, 일본어, 중국어 실력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중국어를 일본어 억양으로 말하고, 한국 스탭에게 영어를 사용하는 등의 순간적인 부작용은 있지만 힘든 해외 로케이션을 경험한 연출부 대부분이 훌륭한 수준의 서바이벌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뉘앙스가 전달이 안 되는 탓에 한국인들끼리 말할 때보다 두세배를 이야기해야 80%가 전달되는 상황”에서 피치 못할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영화에 문외한인 통역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카메라에 필름을 집어넣는 부위를 말하는 ‘필름 매거진’을 ‘영화잡지’로 통역하여 엉뚱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단 한번의 현장 경험도 소중하기에 한 영화의 통역이 또 다른 한국영화로 연결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깡패수업>을 일본에서 촬영한 이후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배웠고, 그때 함께했던 통역팀을 고스란히 다시 꾸리는 등 의사소통 문제에 만전을 기했던 <역도산>의 김선아 PD는 시대물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유연한 소품조달을 위해 미술쪽 스탭을 일본인으로 구성했다. 이 경우 한국보다 전문화·세분화된 일본의 스탭 문화는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문화적 차이는 현장에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태평하고 느긋한 중국의 엑스트라들은 성마른 한국 조연출에게 영원한 골칫거리다. 온갖 악천후에 시달렸던 <남극일기> 제작진을 가장 괴롭힌 것은 안전과 노동조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뉴질랜드 스탭의 스타일이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천>
<청연>

예상치 못한 변수는 막대한 비용발생으로 이어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한 상황. 그러므로 “해외 로케이션?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그저 엄포가 아니다. 그러나 혹독한 해외 촬영을 경험한 이들은 가장 중요한 변수로 ‘사람’을 꼽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의 영화 <무사>를 중국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고, 5년 뒤 당시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무장한 채 <중천>의 프로덕션을 진행 중인 나비픽쳐스 조민환 대표는 말한다. “<무사> 이후 중국 로케이션과 관련하여 여러 문의를 받았고, 성의껏 답해줬지만 결론은 똑같다. 어차피 영화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기에 각자의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고, 그것을 어떤 투지로 버티느냐가 영화를 결정할 거라는 말을 해준다. <중천> 역시 또 다른 난관을 겪고 있고 새로운 마음으로 극복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관건이다. 그 나라의 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는 것도 좋겠고 완벽한 기후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만큼 확실하게 양질의 프로덕션을 보장하는 건 없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본인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