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0회 칸영화제 결산] 칸의 발견, 크리스티안 문주와 전도연!
2007-06-14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칸영화제의 60번째 축제가 12일 동안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소문난 잔치치고 먹을 게 없다지만, 칸의 이번 ‘회갑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경쟁부문의 영화들이 예년에 비해 고른 수준을 유지했고, 다른 부문의 영화들 또한 비교적 덜 실망스러웠다는 것이 칸 단골손님들의 평가다. 수상결과 또한 몇몇 부문을 제외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루마니아를 영화의 신대륙으로 공식 인정했으며, 세계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전도연에게 칸영화제의 꽃인 여우주연상을 수여한 것만으로 봐도 심사위원들의 노고는 알아줄 만하다. <밀양>과 전도연, 그리고 <숨>에 대한 해외 반응, 황금종려상 수상작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만든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단독 인터뷰, 미국 영화평론가 리처드 페냐의 올해 영화제에 대한 평가, 구스 반 산트 등 감독 5명의 인터뷰, 그리고 단편 경쟁부문에 참가했던 양해훈 감독의 칸영화제 참관기 등 5월16일부터 27일까지 리비에라 해안을 달궜던 제60회 칸영화제를 총정리한다.

“코언 형제의 <노 컨트리 포 올드맨>에 나온 하비에르 바르뎀 대신에 러시아 배우에게 남우주연상을 준 이유는 뭡니까?”

“기억이 안 나네. 음… 왜 우리가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상을 주지 않았냐고? 그가 내게 500파운드를 빚졌기 때문이지.”

폐막식 직후 열린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 스티븐 프리어스는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웃음으로 가로막으며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 사이에 수상작을 놓고 다툼은 없었냐”는 질문에 “장만옥이 나를 때렸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는 정말 심사과정에 관해서는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모든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9명이 영화처럼 미묘한 무언가를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독재적인 심사위원장에게 억압당했다”라는 미셸 피콜리의 농담 섞인 이야기만이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게 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전도연, 이견없는 수상

<4개월, 3주, 그리고 2일>

각 부문 수상자들을 놓고 심사위원들끼리 육탄전을 벌였는지 아니면 신사적으로 투표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크리스티안 문주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60번째 황금종려상을 준 것만큼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나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모두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오르한 파묵은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주는 데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지 않았다”라고 자신감있게 말했고, 시상식을 TV로 지켜보던 기자들도 황금종려상을 치켜든 루마니아의 낯선 감독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으니 말이다. 5월28일자 <리베라시옹>은 “어려운 제작 환경 속에서 작가정신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든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2005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크리스티 푸이유의 <라자레스쿠씨의 죽음>과 지난해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의 <12시8분 부쿠레슈티의 동쪽>이 루마니아영화의 존재를 선언했다면,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루마니아영화의 전성기를 개막한 셈이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그리 차이나지 않았을 법한 또 다른 부문은 바로 여우주연상이다. 5월23일의 기자시사와 24일의 공식상영 이후 많은 언론들은 전도연의 뛰어난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상식 당일인 5월27일 <뉴욕타임스>는 “전도연은 올해 칸영화제를 빛낸 열정적이고 두려움 모르는 여배우들의 인상적인 명단에 들었다. 일요일 밤 발표될 여우주연상은 황금종려상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라고 밝혔고, <리베라시옹> 또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전도연을 꼽았다. 무료신문인 <메트로> 또한 리뷰에서 “이 영화는 전도연의 놀라운 연기로 우리의 넋을 빼놓는다. 여우주연상은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라고 극찬한 뒤 27일자에서 다시 전도연을 여우주연상감으로 소개했다. 그 외에도 구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 줄리안 슈나벨의 <잠수복과 나비>, 마르잔 사트라피와 뱅상 파로노의 <페르세폴리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고요한 빛>도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기에 이들의 수상에 그다지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황금종려상 수상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선택이 모두 박수를 받은 것만은 아니다. 기자회견에서 제기됐던 질문처럼, <추방>의 콘스탄틴 라브로넨코에게 수여된 남우주연상은 대다수 참가자들이 공히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의 전작 <리턴>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라브로넨코의 연기는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만, <잠수복과 나비>에서 혼신의 장애인 연기를 보여준 마티외 아말릭이나 <노 컨트리 포 올드맨>에서 괴이한 분위기의 킬러를 묘사한 하비에르 바르뎀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가와세 나오미의 <애도의 숲>에 그랑프리가 돌아간 것 또한 마뜩잖은 판정이다. 아들을 잃은 뒤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아내의 무덤을 찾는 남성 노인의 여정에 동참하는 과정을 그린 <애도의 숲>은 “바람, 소리, 기억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감독의 뜻이 다소 얄팍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동서양 기자 사이에서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 프랑스 영화잡지 <르 필름 프랑세 데일리>가 실시한 별점 투표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고르게 얻었지만, 아시아권 기자들은 대체로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일본 기자들의 상당수는 이 영화의 수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답이다. <천국의 가장자리>에 각본상이 주어진 것도 의아한 선택이다. <미치고 싶을 때>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터키계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의 신작은 EU 가입을 앞둔 터키와 독일의 화해를 통해 유럽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서사극이다. 교수, 창녀, 교수의 아들, 창녀의 딸 등이 뒤얽히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촌스러울 만큼 도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각 캐릭터들은 서둘러 용서와 화해로 모든 관계를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리베라시옹>은 “감독은 영화 구석구석을 충만하게 만들어, 불멸의 인생에 교훈을 전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극찬하며 지극히 유럽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제 초반부터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와 <르 필름 프랑세 데일리> 별점투표에서 꾸준히 수위권을 유지해온 코언 형제의 <노 컨트리 포 올드맨>이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한 것 또한 충격이다.

소쿠로프의 <알렉산드라>, 올해 칸의 가장 정치적인 영화

영화제 후반에 상영된 영화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알렉산드라>였다. 장교인 손자를 위문하기 위해 전쟁터를 방문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푸틴의 더러운 체첸전쟁을 미화했다”는 악평과 “전쟁이 남긴 아픔을 전투신 하나 없이 훌륭하게 보여준다”는 호평이 엇갈렸지만, 대체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 영화는 이번 칸영화제의 가장 정치적인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됐다. <알렉산드라>와 함께 영화제에 뒤늦게 당도한 다큐멘터리 <반란: 리트비넨코 사건>(특별상영 부문) 또한 칸의 전통인 정치성을 드러내는 영화였다. 지난해 런던에서 독살당한 전직 KGB요원 리트비넨코 사건을 과감하게 추적하는 이 영화는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폐막작인 드니 아르캉의 <암흑의 시대>(비경쟁 부문)는 올해 칸에서 가장 지적이고 성숙한 영화 중 하나라는 반응을 얻었다. 잘나가는 아내와 무관심한 아이들 틈에서 소심하게 살아가는 남자를 그리는 이 영화는 아르캉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현대사회를 꼬집는다.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현대는 또 다른 중세’라는 결론을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알렉산드라>

반면 영화제 후반의 최대 복병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임스 그레이의 <우리는 밤을 지배한다>는 실망감을 안겼다. 아버지와 형을 경찰로 둔 클럽 매니저의 냉혹한 운명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그레이는 전작인 <팀 로스의 비열한 거리>와 <더 야드>처럼 원하지 않았던 전쟁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어가는 남자를 통해 스릴러 장르를 탐구하지만, 몇몇 뛰어난 액션장면 외에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결국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살 드뷔시 극장은 기자들의 맹렬한 야유로 가득 찼다. 카트린 브레이야의 시대극으로 관심을 끌었던 <오래된 정부>도 엇비슷한 반응을 얻었다. 결혼을 앞둔 미남 청년과 귀족집 딸, 그리고 이 결혼을 반대하는 청년의 오랜 연인이 뒤얽히는 이야기인 이 영화는 “고전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는 브레이야 감독의 당당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1천만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부어 창조한 18세기 풍경과 팜므파탈 아시아 아르젠토의 매력을 제외하면 별 건질 구석이 없다. 하지만 앞선 영화들이 아무리 기대에 못 미쳤다 해도 경쟁부문 마지막 상영작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내게 약속해줘>만큼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 관해선 상세히 적는 게 지면 낭비라 생각되는 탓에 그저 ‘떠들썩하기로는 <집시의 시간>+<언더그라운드>, 그러나 알맹이는 0’이라고만 표현하겠다.

인물 개인의 여정과 사회적 배경의 교차, 칸의 새 경향으로

<르 피가로>는 이번 칸의 주요 경향으로, 우선 인물의 개인적 여정과 정치·사회적 배경이 교차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란혁명을 그리는 <페르세폴리스>, 체첸전쟁을 담은 <알렉산드라>, 사회적 참담함을 묘사하는 <임포트/익스포트>, 민족간 이동과 사회적 혼성을 말하는 <천국의 가장자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많은 작품들이 인간적 고난을 이야기한다면서, 낙태로 인한 비극을 그리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추방>, 급작스런 신체마비를 그리는 <잠수복과 나비>, 갑작스런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고통을 담은 <밀양> <사랑의 노래들> <애도의 숲> 등을 그 예로 꼽았다. 또 <뉴욕타임스>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리베라시옹>은 대사가 극히 적고 촬영에 극도의 공을 들인 <고요한 빛> <런던에서 온 남자> <추방> <알렉산드라> 등을 일컬어 “기념비적 영화에 도달하기 위해 아예 벙어리가 되려나보다”라고 비꼬았고,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왕가위나 <파라노이드 파크>의 구스 반 산트가 이미 구축해놓은 자신의 스타일에 안주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칸이 60살을 맞아서 회춘했다”는 <할리우드 리포터>의 표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칸의 60살 생일잔치가 성공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근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수준 높은 주방장들의 명품 요리와 신인급 파티셰들의 근사한 디저트가 수만명의 하객을 즐겁게 했고, 기습공연을 가진 보노나 브란젤리나 커플, 오션과 12명의 악당 등 할리우드 명사들의 방문 또한 잔치 분위기를 한껏 돋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해 칸영화제가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진정한 이유는 어느 해보다 많았던 상영작과 행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첩첩산중으로 이어진 영화와 행사 속에서 숱하게 정신을 잃었던 이들은 다음과 같은 <리베라시옹>의 말에 정말로 공감할 것이다. “밤잠 못 자고 칸에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 그러다 상영관에서 곯아떨어졌을 때 스크린 위에 펼쳐졌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은 진정 영화의 장면들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꿈이었던가.”

취재지원 조경희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