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우가 누구냐?” 해외 언론의 반응을 현장에서 듣기 위해 <밀양>의 칸 기자시사회장에 들어갔던 한국 기자라면 누구나 이 같은 역질문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많은 외국 기자들은 이 ‘처음 보는 한국 여배우’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고, “인터뷰를 하게 해달라”고 천연덕스럽게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상영 직후 인터뷰를 했던 한 프랑스 기자는 전도연에게 “만약 당신이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하면 내가 시상식장에 올라가 시위를 하겠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현지시간으로 <밀양>의 첫 기자시사가 열린 5월23일 이후 전도연은 유난히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진 영화가 많았고, 그만큼 열연을 펼친 여성 연기자가 두드러졌던 이번 칸영화제에서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떠올랐다.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연기로 영화 전체를 혼자 힘으로 끌고가다시피 한 아나마리아 마린카,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의 <알렉산드라>에서 젊은 병사들의 상처를 무심한 듯, 그러나 포근하게 감싸줬던 ‘러시아의 국민배우’ 갈리나 비시네프스카야, 파티 아킨 감독의 <천국의 가장자리>에서 딸을 사고로 잃은 뒤 그 상처를 극복하는 어머니의 내면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한나 쉬굴라 등이 경쟁자로 지목됐지만, 폐막식날인 27일까지도 전도연은 가장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다. 심지어 무료신문 <메트로>는 27일자 신문 1면에 ‘우리의 선택’이라는 기사를 싣고 전도연을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지목했다.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 조짐은 <밀양>의 공식상영 직후 쏟아져나온 여러 리뷰에서부터 감지됐다. <뉴욕타임스>는 5월25일자 ‘강한 여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제’라는 기사에서 “그녀의 고통은 이창동 감독의 신중한 스타일이 담아내기에 너무 커 보이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 고통 앞에서 나약한 영혼에 대한 전도연의 묘사는 최고의 연기다. 그녀는 올해 칸영화제를 빛낸 열정적이고 두려움 모르는 여배우들의 인상적인 명단에 들었다. 일요일 밤 발표될 여우주연상은 황금종려상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영국 <이브닝 스탠더드>의 데릭 말콤 또한 5월25일자 ‘모든 것을 견디는 어머니’란 기사를 통해 “칸의 심사에 관한 한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전도연이라 불리는 한국 여배우는 유괴되고 살해당한 아이의 어머니를 다룬 이창동 감독의 뛰어난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를 통해 여우주연상감으로 첫손에 꼽히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타임>의 리처드 콜리스 또한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우주연상감으로 이야기되는 전도연의 연기다. 그녀는 열정적인 연기와 긴장병적인 연기를 똑같이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또 전도연은 관객과 비밀스런 친밀감을 나누려는 듯, 가장 급박한 순간에서도 작은 미소를 통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뒤늦은 편이었지만, 전도연에 대한 칭찬만큼은 아낌이 없었다. 폐막식 다음날인 28일 <리베라시옹>은 “신애 역할을 맡았던 전도연은 한마디로 매우 뛰어났다. 배우는 2시간20분 동안 화면에서 기뻐하다가, 얼이 빠지기도 하다가, 신을 미친 듯 믿으며 빛나다가, 신에게 버림받은 감정과 실망으로 분노한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밀양>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조차도 전도연의 연기에 관해서만큼은 “쌓였던 슬픔과 분노를 뿜어내고 ‘다시 태어났다’고 느끼는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커다란 감정의 변화 속에서 그녀는 이를 설득력있게 전달하면서 100%짜리 광신도로 변신하며, 심지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만나기로 결심한다”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전도연의 수상 가능성이 팽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긴장했던 것은 다름 아닌 칸 현지에서 폐막식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기자들이었다. 특히 폐막식 당일인 27일 오전 “<밀양>이 비교적 작은 상을 받는다”는 정체 불명의 정보가 돌기 시작하면서 전도연이 거의 거머쥐었던 여우주연상은 한때 물거품이 된 듯 보였다. 칸에서 ‘작은 상’이라 함은 심사위원상이나 시나리오상을 의미하는 탓이다. 경쟁부문에 속한 그 어떤 작품도 2개 이상의 상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 확실한 분위기였기에 전도연은 심사위원들의 ‘고뇌에 찬 상 분배’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와중에 서울에서는 이런 칸의 분위기로 전도연의 수상을 기정사실로 확정짓고 축하의 팡파르를 울리고 있었다. 물론, 폐막식이 시작돼 이들 ‘작은 상’의 주인이 하나씩 가려지면서 칸 프레스룸의 쓸데없는 긴장 또한 사라졌고, 마침내 심사위원장 스티븐 프리어스가 “전도연, 시크릿 선샤인!”이라고 외치자 한국 기자뿐 아니라 여러 외국 기자들까지 박수를 치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전도연과 인터뷰를 했던 그 프랑스 기자가 무대로 뛰쳐올라가지 않아도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