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0회 칸영화제 결산]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단독 인터뷰
2007-06-14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역사적 사유보다는 좀더 작은 이야기로 가야한다”

개막작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모두를 낙담하게 만들었던 칸영화제 첫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루마니아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기자 시사회를 박수로 휘몰아쳤다. 낙태가 금지된 차우셰스쿠 독재하의 1987년.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은 흔들리는 카메라를 들고 낙태를 시도하려는 두 소녀의 악몽 같은 이틀을 숨이 막힐 듯 뒤쫓는다. 미학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오랜만에 ‘새로운 발견’의 영화적 희열을 안겨준다.

사실 한국의 영화제 마니아들에게 크리스티안 문주는 완벽하게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루마니아 역사상 최대의 흥행작 중 하나인 장편 데뷔작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The Occident)로 2002년 부천영화제를 직접 찾은 적이 있고, 2006년에는 그가 한 작품을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로스트 앤 파운드>(Lost & Found)가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하지만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재기발랄한 유머 감각이 넘실대던 전작과 달리, 다르덴 형제를 연상시키는 리얼리티의 벌어진 상처를 통해 루마니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되묻는 영화다. 도대체 지금 루마니아에는 어떤 영화적 물결이 태동하고 있는 것일까. 다행히도 영화제가 중반을 지나가던 지난 5월24일 크리스티안 문주와 조용히 단독 인터뷰를 나눌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인터뷰한 지 정확하게 4일 뒤, 크리스티안 문주는 황금종려상을 손에 거머쥐었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한국의 영화잡지 씨네….
=(말을 끊으며) 아, 지난 2002년 부천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무슨 영화였나.
=장편 데뷔작인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였는데, 정말 좋았다. 매우 흥미진진한 나라였다. 당시에 꼭 한국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왔다는 걸 몰라봐서 미안하다. 5년 만의 두 번째 장편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1968년에 법령을 내려서 출산을 장려하고 피임과 임신중절을 강력하게 금지했다. 그래서 68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을 ‘작은 법령들’이라 부른다. 알다시피 나는 정확하게 1968년생이다. 나 역시 작은 법령이다. (웃음)

-영화의 강력한 리얼리즘이 머리를 강타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많은 루마니아영화들이 역사적 리얼리즘을 표현하는 데 능숙한 듯하다.
=그건 루마니아 방식의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루마니아 감독들은 같은 학교(부쿠레슈티 필름아카데미)에서 함께 영화를 공부했기 때문에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공통점이 좀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나이도 비슷비슷하니까. 하지만 이것이 ‘도그마’ 같은 방식은 아니라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한다. 도그마처럼 특정한 법칙을 지켜가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각각의 감독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개성적인 감각들이 있다.

-차우셰스쿠 독재 세대라는 것이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차우셰스쿠가 금지했던 탓에 더더욱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에 속해 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고 차우셰스쿠가 몰락하자 뭔가 중요한 일, 그러니까 중요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플라워 제너레이션이라고나 할까.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오로지 자연적인 조명과 촬영 기법(롱테이크와 들고 찍기)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하지만 이처럼 날것으로 보이기 위해서 오히려 엄청난 준비과정을 거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어시스턴트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잘 훈련되어 있는 사람이다.

-특히 주인공 여배우가 컴컴한 부쿠레슈티의 밤길을 달려가는 롱테이크 장면은 객석을 완전히 숨죽이게 만들었다. 간단한 장면으로 보이지만 결코 즉흥적으로 설계한 장면은 아닐 것 같았다.
=일단은 촬영감독에게 그 장면의 촬영이 가능한지를 물어봤고, 그와 함께 모든 프레임을 미리 정확하게 설계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여배우의 뒤를 따르는 30여명 스탭들의 소음이었다. 음악 없이 현실적인 소음과 여배우의 숨소리만으로 가는 장면이라 30여명이 완전히 숨을 죽이고 뒤따라야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그러기란 정말로 어렵다. (웃음)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 상황인 듯 대단히 자연스럽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본에 얼마나 충실한 것인가.
=나는 모든 대본을 촬영 전에 완벽하게 마무리짓고, 배우들 역시 쓰인 대사를 미리 여러 번 체크해서 완전히 암기하도록 만든다.

-즉흥 연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나는 결코 즉흥적으로 대사를 바꾸거나 연출하지 않는다. 이미 대본을 쓰기 전에 배우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들의 화법과 말버릇 같은 것 역시 미리 대본상에 완벽하게 녹여 넣으려고 한다.

-사실 영화는 차우셰스쿠의 법령이나 당시 루마니아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던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저널리스트들은 이 영화를 ‘반낙태영화’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처음 나오는 ‘1987년’이라는 자막. 그것만으로도 모든 설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이상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주절주절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해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처리한 것은, 영화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란 내 믿음 때문이다.

-영화의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선택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두 소녀가 낙태비용을 물기 위해서 불법 낙태 시술사에게 몸을 파는 장면에서 당신은 섹스 행위 자체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낙태된 태아는 결국 관객에게 보여주고 만다. 두 가지 선택을 어떤 식으로 감행했는가. 어떤 기준인가.
=물론 나는 감독이므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일단 나는 섹스장면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섹스는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섹스장면은 그냥 지나치고, 오히려 내가 원하는 이슈인 낙태에 대해서는 좀더 강렬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꼭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건 이야기의 정직함과도 관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겠지만 나는 유기된 영아를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여겼다.

-동구권 영화들은 역사를 거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당신 영화는 아주 지엽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야기 구석구석에 수많은 메타포를 짊어진 역사영화들은 여전히 동구권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 동구권의 젊은 관객은 아무도 그런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비난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젊은 루마니아 감독들은 역사를 거대하게 사유하는 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좀더 작은 이야기로 가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다.

-루마니아의 평론가들은 당신 세대의 감독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나는 새로운 세대다. 이전 루마니아 대중에게 알려진 감독들은 공산 독재하에서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만들며 시작한 노인들이며 평론가들도 그들 세대다. 그래서 나이 든 루마니아 평론가들은 내 영화에 대해 아주 악의적이고 편견으로 가득한 평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내 세대의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들은 늙은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던한 현대영화에 가깝기 때문에 구세대 관객과 평론가가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불평이 뭔가.
=왜 그렇게 부정적인 루마니아의 이미지를 외국에 보여주냐는 불평들이다. (진력이 뺏다는 듯이) 푸~~~! 루마니아에는 영화적인 전통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평론의 전통도 없다.

-해외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를 올림픽 국가대표로 여기는 편견은 한국도 다를 게 없다. 하여튼 그 같은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응대하는가.
=사실 나 역시 영화 저널리스트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차우셰스쿠 독재하에서는 월간 신문에 기고했고, 혁명 이후에는 월간 신문을 데일리 신문으로 재창간하는 데 일조했고, 이후에는 TV와 라디오 같은 매체들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세상에는 바보 같은 저널리스트들이 한둘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서유럽 매체 하나와 인터뷰를 했는데 왕가위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 거냐고 물어보더라. (비웃음)

-기자회견장에서조차 비일비재한 일이다. 최근 루마니아에는 여러 개의 국제영화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다고 들었다. 자국 감독들에게도 좀 도움이 되나.
=사실 칸 같은 국제영화제가 내게는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트란실바니아영화제 같은 곳에서 첫 프리미어를 가지는 것이 재정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도 있다.

-국제영화제는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경향을 좇는다. 이를테면 90년대의 이란영화와 홍콩영화, 그리고 최근의 한국영화. 여기서 만난 몇몇 사람들은 한국의 차례는 이미 지나가고 있으며 이제는 루마니아의 차례가 왔다고 말하더라.
=(웃음). 설명하자면, 새로운 루마니아영화들은 명확한 포인트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제적인 조명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런 반응에 맞춰서 루마니아 영화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내 영화의 이미지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정직한 영화의 정직한 이미지니까. 그리고 내 영화가 경쟁부문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다른 젊은 루마니아영화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늘어나기를 바란다.

-루마니아는 현재 할리우드영화의 값싼 로케이션 장소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인기 덕분에 자국영화에 참여할 스탭들을 모으는 것이 좀 어렵진 않은가.
=혁명 이후 10여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쓸 만한 기술자들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의 할리우드 로케이션 붐 덕택에 괜찮은 기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일이다. 물론 스탭들의 몸값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고, 할리우드영화 촬영이 있는 날이면 부쿠레슈티 시내의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웃음) 하지만 어쨌거나 많은 영화가 촬영되는 덕에 영화계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고, 촬영 장비들도 훨씬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경쟁이 있으면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마련이다. (웃음)

-지난 몇년간 루마니아영화들이 칸영화제의 여러 부문을 휩쓸어왔다. 그것도 경쟁 덕택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세대의 감독들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경쟁 덕택에 영화도 점점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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