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파크>는 구스 반 산트의 새로운 영화일까. ‘죽음 3부작’으로 불리는 <제리>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 이후, 사람들은 반 산트의 다음 작품이 3부작의 그늘을 벗어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 믿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신작 <파라노이드 파크>는 지난 3부작과 거리가 먼 영화인 동시에 3부작의 자장 속에 여전히 발목을 잡힌 영화이기도 하다. 구스 반 산트는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 스케이트 보더 소년의 ‘사고 뒤’ 일상을 따른다. 비극의 외상과 내상은 전혀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소년의 트라우마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객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반 산트는 3부작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소년에게 접근한다. 엘리엇 스미스에서 (심지어) 니노 로타에 이르는 사운드 트랙은 거의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소년의 내면적 갈등을 음악적인 효과로 치환해내고, 크리스토퍼 도일과 (스케이드 보딩 장면을 맡은) 캐시 리의 카메라는 정말이지 ‘소년의 마음’처럼 흔들려댄다. 그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퇴보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정서적인 환기로까지 이어지는 반 산트의 또 다른 걸작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 산트가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현대 아티스트 중 한명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칸영화제가 이 희귀한 아티스트에게 ‘60주년 특별상’을 안겨주기 4일 전,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의 옥상에서 짧은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가졌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 기초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블레이크 넬슨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픽션이다. 넬슨은 포틀랜드에 있는 시인 그룹의 새로운 세대였다. 나는 그가 젊은 성인용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작품인 <록스타 슈퍼스타>를 2년 전쯤 봤다. 이혼한 부모를 가진 고등학교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였다.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왠지 이야기가 좀 복잡해 보였고, 기다리던 중 넬슨의 새로운 소설인 <파라노이드 파크>가 나온 것이다. 넬슨의 소설들은 언제나 포틀랜드에서 성장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나도 포틀랜드 출신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대단히 회고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로 꼭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까 실재 사건은 결코 아니라는 뜻인가.
=기차에 부딪혀서 죽는 사람들은 항상 있으니까 뭐.
-당신은 보통의 성인들보다 젊은 십대에 대해 더욱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내 젊은 시절의 경험 덕분이겠지. 그때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거다. 그리고 역할을 맡을 배우가 딱 그 나이라면 힘들 게 없다. 그 나이의 배우들은 역할을 그냥 받아들일 수 있다. 감독으로서는 그런 과정을 북돋워주기만 하면 된다. 특별히 연기를 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스케이트 보더 문화는 북미 특유의 유스 컬처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했나.
=나도 젊을 땐 스케이트 보더였다. 물론 지금과는 좀 다르다. 당시는 기업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대량생산하기 전이었고 우리는 직접 스케이트 보드를 만들어야만 했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어떤 종류의 아이들인가.
=그들은 아마도 아웃사이더일 것이다. 쿨한 아이들이지만 그다지 반에서 인기있는 아이들은 아니다. 일반 아이들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문제가 많고, 또 더욱 예술적인 감수성이 깊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아이들이다.
-마이 스페이스(미국의 ‘싸이월드’)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나 모르겠지만 그건 100% 진실은 아니다. 물론 마이 스페이스에 배우를 구한다는 포스트를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마이 스페이스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이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우리 배우들은 마이 스페이스뿐만 아니라 TV뉴스와 신문, 그리고 전단지 등 많은 방식을 통해서 캐스팅했다. 사실 우리 영화의 캐스팅 디렉터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다. 기껏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열심히 배우들을 캐스팅해놨더니 마이 스페이스가 영광을 다 가져간다고. (웃음)
-주인공인 알렉스 역의 게이브 네빈스는 어떤 면모가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한 것인가.
=게이브는 알렉스라는 캐릭터를 매우 자연스럽게 자신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촬영이 지속되면서 그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연기를 잘해냈다. 우리가 원하는 배우가 그런 아이였다. 배우가 캐릭터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진짜 캐릭터를 캐스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게이브를 캐스팅하는 데는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처음엔 5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크리스토퍼 도일은 곧바로 게이브를 지목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스크린으로 잡으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대답해더라. 물론 프로페셔널한 배우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일찍이 정해둔 상태였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당신은 기차에 의해 몸이 반으로 갈린 채 기어가는 경호원의 모습을 아주 똑바로 스크린에 보여준다. 왜 하필 그 장면을 그토록 세세하게 CG를 써서 표현해야만 했나.
=뭐 그건 그저 테크니컬한 부분이라고 해두자. 사실 브레이크 넬슨의 원작에서는 몸이 반으로 잘리지 않는다.
-왜 슈퍼 8mm와 35mm 카메라를 혼용하기로 결정한 것인가.
=스캐이트 보딩을 찍는 주요한 카메라가 슈퍼 8mm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을 때 35mm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리고 스케이트 보더들은 값비싼 35mm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슈퍼 8mm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파인딩 포레스트>와 <굿 윌 헌팅> 같은 할리우드영화들 이후로 당신은 완벽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방향 전환을 하기 전에 어떤 영화들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바 있는가.
=글쎄.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있는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영화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언제나 그처럼 미니멀리스틱한 영화들에 영향을 받았고, 벨라 타르의 이전작 <사탄 탱고>를 보는 순간 곧바로 마음이 진동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건 미니멀리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화적 전통의 바깥에서 홀로 성장한 영화들에 대한 매혹이다.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얼터너티브한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역시 올해 경쟁부문에 올라 있는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네마는 다른 전통적 시네마와는 연결지점이 없는 영화들이고, 나 역시 얼터너티브한 접근법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번 생각해보자. 가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마셜 맥루한은(웃음),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미디어는 자신만의 형태를 찾기 전까지는 메시지를 흉내낸다. 시네마의 미디어는 자신만의 것을 찾기 전까지 연극을 흉내내왔고, 이제는 자신만의 시네마를 찾고 있다. 사실 지금의 영화는 대본과 배우 등 여전히 연극과 거의 동일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미디어가 태동하면 지금 같은 영화는 모두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3D비디오의 세계라거나. 시네마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시네마가 사라지기 전에는 <하비 밀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생각 중이긴 한데 프로젝트가 잘 접합되지 않고 있다.
-당신은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에는 더이상 아무런 흥미도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로맨틱하고 고전적인 이야기에도 여전히 흥미가 있다. 만약 내가 <하비 밀크>를 만든다면 좀더 메인 스트림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메인 스트림 화법은 당신이 지난 몇년간 벗어나려 애썼던 것들이 아닌가.
=그건 스튜디오의 정치학 때문이다. 미디어는 점점 거대해지고 점점 표준화해간다. 왜냐하면 제작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즈니스 스쿨에서 ‘어떻게 합병에서 살아남는지’를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안전한 선택만을 한다. 안전한 선택은 곧 그들의 직업 또한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액션의 화법이다. 액션은 여러 세대의 다양한 관객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관계로 액션이 지배적인 스토리 텔링의 형태가 되고 말았다. 보통의 드라마가 오히려 특수한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유니버설스튜디오에 가서 <하비 밀크>를 찍겠다고 하면, 그들은 액션도 스릴러도 없는 영화이니 포커스 픽처스로 가져가라고 말한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가 영화의 메인이었고 액션은 익스플로이테이션 아이템일 뿐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지 창조성이라곤 없는 비즈니스의 정치학이 존재할 뿐이다.
-왜 이번 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 도일과 작업했는가.
=<싸이코>를 함께 촬영하면서 그를 알게 됐다. 그와 일하는 과정은 정말로 즐겁다. 그는 정말이지 엔터테이닝한 인간이다. 그래서 내가 현장에서 엔테테이닝해야 할 필요가 없다. (웃음) 아주 좋다. 그리고 그의 아이디어 역시 엔터테이닝하다. 엄청난 양의 아이디어가 그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온다. 게다가 그는 현존하는 촬영감독 중에서 가장 모험을 감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잭슨 폴록 같다. 그냥 집어던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자신이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언제나 칸에서 환대받았다. 칸이란 당신에게 어떤 장소인가.
=언제나처럼 신경쇠약적인 장소. (웃음) 칸에 오면 영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10년 전과는 분명히 뭔가가 다르다. 영화가 진화한다. 우리가 진화한다. 수많은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한다. 지난 며칠 동안에도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