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0회 칸영화제 결산] <눈먼 산>의 리양 감독
2007-06-14
글·사진 : 문석
“중국에서 이 영화를 개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리양의 <눈먼 산>(盲山)은 데뷔작이었던 <눈먼 광산>(盲井)에 이어 중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슈에메이(황루)는 인신매매범들에 속아 산골마을 한집의 신부이자 며느리로 팔려간다. 인신매매범들에게 돈을 주고 남편이 됐다는 남자는 부모의 협조 속에서 슈에메이를 강간하고 마을에 눌러앉히려 하지만,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대대적인 협조 탓에 슈에메이는 번번이 붙들리고 만다. 그 뒤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질이다. <눈먼 산>의 러닝타임 97분 중 96분은 한없는 괴로움의 나락이지만, 번개 같은 마지막 순간은 ‘올해 칸영화제 최고의 라스트 신’이라 할 만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 덕분에 <눈먼 산>은 상영 때마다 5분 이상의 기립박수 세례를 받았다. 독일 방송국 등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44살의 나이에 <눈먼 광산>으로 데뷔했던 이 늦깎이 감독은 온화한 표정으로 자신의 두번째 영화를 소개했다.

-칸영화제에 온 소감은.
=칸영화제에, 그것도 60주년을 맞은 칸에 오게 돼 영광이다. 영화학교를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칸에 오기를 꿈꿔왔는데 결국 이렇게 오게 돼 진심으로 기쁘다.

-<눈먼 산>은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가.
=영화 속 이야기 자체가 실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이 같은 일이 실제로 10년 전 일어났었고, 당시 신문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이야기를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3월부터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이 사건이 벌어졌던 지방으로 가 취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눈먼 광산>에서도 그랬지만, 취재를 열심히 한 흔적이 보인다.
=이 이야기는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농민들의 삶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여자가 납치당해 팔린 과정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을 구해낸 경찰도 만났고, 납치한 여자들을 산 농민들과 여자를 농민들에게 팔아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도 만나 인터뷰했다. 어떻게 수백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취재하고 나서도 아직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실제 산골마을에서 촬영했는데, 그곳에서는 이 소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이런 사건은 대체로 중국 북부지방에서 일어났다. 이 영화를 찍은 곳은 중국 동부의 시안 부근이다. 이곳의 농민들은 반대하기는커녕 영화 제작을 도와줬다.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생생한데, 혹시 주민들을 배우로 썼나.
=맞다. 3명을 제외하면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다. 여주인공 황루는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막 졸업한 배우다. 그리고 학교 교사를 맡았던 친구도 연기 전공자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다. 하하하…. (그는 인신매매범으로 출연한다.) 농부 역할은 농부가 연기했고, 경찰 역할은 경찰들이 연기했다. 사실 그들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를 뿐 아니라 대다수가 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니까. 그래선지 촬영 초반에는 즐거워했지만,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자 이해하지 못해 “왜 아직도 끝나지 않느냐”며 따졌다. (웃음)

-마지막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다.
=나는 이 영화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모두 그녀에게 연민을 갖기를 원했다. 그녀는 그 시골에서 평생 살아가거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자유를 찾기 위한 그녀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눈먼 광산> 때는 정부와 충돌했는데, 이번 영화는 어떤가.
=<눈먼 광산>은 당국의 허가 없이 찍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영화 못 만드는 처벌을 받았다. 그 뒤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돼 이번에는 촬영허가를 얻었다. 대사에 대한 심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중국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고 있다.

<눈먼 산>
<눈먼 산>

-앞으로도 중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그렇다. 내 영화는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것은 다큐 작업을 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내가 만든 두편 모두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시장개혁 이후 중국의 사회문제를 다뤘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면서 새로운 종류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두 영화는 공히 이 과정에서 인간성의 나쁜 측면을 다뤘다.

-6세대의 흐름도 지나가면서 중국 영화계는 상업영화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에 상업영화는 필요하다. 상업영화가 중국 영화산업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장이 존재해야 진지하고 예술적인 영화가 살아남을 공간도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상업영화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관객이 진지한 영화를 외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극장 소유주들이 이런 영화를 상영하기를 원치 않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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