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커피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
“어우, 왜 이래요~ 이러지 마요 진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극중 한결(공유)이 짓궂게 장난이라도 쳐오면 은찬의 반응은 먼저 이렇게 퉁명스럽다. 은찬은 모든 게 서툴고 세련되지 못하다. 사랑받는 것뿐 아니라 표현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사랑 고백을 해도 무슨 화난 일 있어 따지는 사람 같다. 우씨, 사랑해요, 우씨. 아닌 척해서 그렇지 사실 누구나 은찬 같았던 적이 있다. 뜨겁게 뛰는 심장을 노련한 제스처로 다룰 줄 알았다면, ‘나는 그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어’라는 두려움을 쿨하게 넘길 줄 알았다면, 그게 청춘이었을까.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내 속에 있는 것들이 꾸밈없이 튀어나오고 마는 쑥스러운 순간들.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은 그런 청춘의 시간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고은찬이 남장여자라는 극중 설정은 이런 청춘의 미숙함을 사랑스럽게 확대시키는 확대경 역할을 한다. 소년과 소녀의 경계, 둘 중 하나의 성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는 앳되고 구김살, 거짓이 없는 청춘의 표면을 쉽게 통과한다.
배우 윤은혜는 이런 고은찬과 분리되지 않는다. 윤은혜는 2005년 SBS 간판 오락프로그램 <엑스맨>에 고정 출연하는 동안 ‘소녀장사’로 불렸다. 힘이 강호동에 견줄 만하고 다른 남성 출연자들과 씨름판에 뛰어들 수도 있는 여자아이. 김종국과 형성된 연애 라인에서도 윤은혜는 사랑받는 데 익숙한 새침데기가 아니라 다른 남자들의 고백에 좋아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그래도 “종국이 오빠밖에 없어”서 오빠에게로 달려가는 꾸밈없고 단순무식한 소녀였다. 1999년 여성 아이돌그룹 베이비복스의 멤버로 데뷔할 당시, 섹시하고 드센 다른 네명의 언니들에 가려 그만그만한, 그리고 가끔씩은 라이벌 그룹 핑클의 성유리를 따라한 스타일로 오리지널리티조차 잃어버린 막내에 불과했던 그녀가 ‘소녀장사’가 되면서부터 비로소 자기 몫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미인상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윤은혜의 친근하고 씩씩한 톰보이 이미지는 하지원, 김선아, 신은경 등에게서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종합병원> <조폭마누라>의 신은경은 강한 주관으로 남자를 제압할 수도 있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이고, <위대한 유산>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는 지지리 궁상맞은 여자의 일상에 훨씬 밀착해 있는 캐릭터이며 <다모>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은 독하고 처절한 여성성을 내포한다. 윤은혜는 신은경보다 다정하고 순하며, 김선아보다 인생의 쓴맛에 덜 찌든 해맑은 청춘이다. 그리고 하지원 같은 오기나 한을 드러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윤은혜는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극이 아닌 버라이어티쇼의 세계에서 먼저 쌓았다. 이른바 ‘윤은혜 다이어트’ 같은 것들을 통해 노력으로 예뻐지는 과정도 보여주었고, 드라마 캐스팅 뉴스 때부터 윤은혜 안티를 표방했던 <궁> 원작의 팬들을 마침내 자신의 우방이 되게 하는 성장도 보여주었다.
“살면서 뭐든 한번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 말 한마디에 황인뢰 PD가 그녀를 드라마 <궁>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극 안에서뿐 아니라 극 밖에서까지도 윤은혜의 삶은 매번 장애물을 넘고 발전하는 모습이었고 그것은 다시 윤은혜라는 배우에게 평범하고 서툴지만 근면성실한 청춘의 이미지를 입혔다. 어느 날 윤은혜가 세련되어지고 고급스런 여성미를 드러내며 여배우들의 일반적인 캐릭터 카테고리 안에 흡수되면 대중은 그것을 ‘배신’이라고 여길는지도 모른다.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 윤은혜가 시골 구석에 내려와 적응 못하는 서울의 멋쟁이, 깍쟁이 아가씨 지현 역을 맡았을 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건 이런 대중의 기대심리의 방증일 것이다. 그런 역은 굳이 윤은혜가 아니어도 된다. 윤은혜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들판을 달릴 수 있는 씩씩한 근성의 소녀여야 한다. 친화력 강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착하고 또 순진한 친구. 여기에 배우의 삶과 캐릭터가 일치하는 데서 빚어지는 진실함까지. 윤은혜는 이웃집 소녀의 탈을 쓴 공주가 아니라 진짜 천하장사, 이웃집 젊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