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안녕, 프란체스카> <두 얼굴의 여친>의 정려원
정려원은 연기자로서의 스타덤보다 ‘패셔니스타’ 스타덤에 먼저 올랐다.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종영 이후 모 인터넷 쇼핑몰이 한시적으로 ‘연예인 파파라치’라는 세일 코너를 마련해 스타일 좋은 국내 여자 연예인 몇명을 내세워 제품을 팔았을 때 그중 정려원의 코너가 있었다. 려원스타일드레스룸(www.rsdressroom.com)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의류쇼핑몰이 있는가 하면, 최근 모 케이블 채널에서는 ‘정려원 in London’이란 제목으로 “패셔너블한 셀레브리티” 정려원의 런던 여행을 일거수 일투족 뒤쫓듯 촬영해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정려원은 국내 대중, 특히 20대 여성에게 커스틴 던스트, 린제이 로한, 올슨 자매 등 할리우드 젊은 스타들의 이미지처럼 그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다. 패셔니스타는 남들 앞에서 나를 개성있고 매력적인 존재로 꾸미고 싶은 청춘의 욕구를 시각적으로 가장 시원하게 해소시켜주는 대상이다. 패셔니스타 정려원의 이미지는 도회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움이 가미된 여성미다. 그리고 이것은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패셔니스타 이효리의 섹시하고 스포티한 컨셉보다도 일상에서의 활용도, 즉 실용성이 훨씬 높은 매력적인 컨셉이다. 20대 여성들은 정려원처럼 되길 원한다. 때마침 21세기 초 전세계 의류업계 시장의 마케팅 화두는 셀레브리티 마케팅이다.
이른바 ‘옷발’ 잘 받는 신체와 깔끔한 마스크를 타고난 것에도 덕을 입어 이렇게 확고하게 패셔니스타로서 굳어진 정려원의 이미지는 그가 극 매체 안에서 맡는 캐릭터들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공주병 걸린 뱀파이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청순하고 맑은 여자 희진, 사랑을 상실한 여자라는 점에서 ‘희진’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가을 소나기>의 연서, 무난하게 1인2역을 소화한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도시여자 그리고 시골여자. 이 모든 캐릭터들은 도회적인 패셔니스타 정려원의 이미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만큼 정려원이 배우로서 무색무취라 그 위로 어떤 향과 색이든 입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편에서 보면 정려원이 극 매체 안에서 무슨 캐릭터를 맡아 이미지를 구축하든 대중은 무관심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려원이 작품을 하면 대중의 관심사는 그녀의 역할이나 연기보다도 무슨 옷, 어떤 가방에 꽂힌다. 이렇게 정려원을 패션 아이콘의 이미지로 열렬히 소비하는 대중은 각종 연예인 사진과 연예계 소문·잡담을 나누는 인터넷 카페 ‘베스트 드레서’(일명 베드)에 모여 그를 ‘스타놀이하는 연예인’이라고 짓궂게 표현한 적도 있다.
하나의 견고한 캐릭터보다도 스타일리시한 외모, 내추럴함에 기반한 다양한 여성미로 소비되는 스타라는 점에서 정려원은 전지현이 소비되었던 방식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오랫동안 전지현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던 모 의류 브랜드가 지난해 이효리를 거쳐 올해부터 정려원을 내세운 변화에서 읽히는 건 동시대 젊은 대중의 패션 아이콘을 기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마침내 정려원은 최근작 <두 얼굴의 여친>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녀’ 전지현의 제스처를 선명히 상기시키는 캐릭터를 맡았다. 여기에는 <허니와 클로버>의 아오이 유우 스타일도 추가돼 있다. 동시대 양국에서 가장 사랑받았고 지금 사랑받고 있는 독보적인 두 청춘 스타의 이미지들을 한 사람이 다 입고 있는 셈이다. 절대 같지는 않은 이 두 가지 스타일을 정려원은 모두 자연스럽고 예쁘게 소화한다. 아오이 유우의 스타일도, 전지현의 ‘엽기녀’ 스타일도 정려원은 별 어색함이 없게 자기 옷으로 소화한다. ‘스타일이 살아 있다.’
그러므로 정려원은 순진한 소녀도, 청순한 여성도, 내숭 떠는 공주병 환자도, 소박한 시골 아가씨도, 왈가닥 여장부도, 아니다. 그는 전지현이 그랬던 것처럼 극중 어떤 역할에든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녹아 들어 그 인물을 패셔너블하게 바꾸는 스타일리시한 청춘이다. 다만 전지현은 신비주의 전략으로 완전 무장했고, 정려원은 케이블 채널이든 온라인 쇼핑몰이든 대중의 패셔니스타로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이 차이다. 그래서 더욱 실용적인 패션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