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의 지존, 한국에 온다
2007-10-09
글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10월2∼3일 양일간 한국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당신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 작업한 영화들을 단 한편도 본 적 없다 해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메인 테마들 그리고 그 유명한 <석양의 무법자>의 휘파람 소리는 모리코네 이후 등장한 전세계의 수많은 팝·클래식 뮤지션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온갖 CF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무수하게 반복돼왔다. 아카데미는 모리코네에게 음악상을 수여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의 음악을 후보에도 올리지 않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과오를 여러 번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모리코네는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악가이다. 영화정보포털 IMDb 사이트에 등록된 그의 필모그래피만 483편. 내년이면 80살이 되는 모리코네는 현재 2008년 개봉예정인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신작 <레닌그라드>의 음악을 작업 중이다. 노장 중의 노장이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서 사라지지 않을 영화음악의 거장. 이번 내한공연을 계기로 엔니오 모리코네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고, 50여년간 구축돼온 그의 음악세계를 짧게 정리해보았다. 생전에 다시 그가 내한하기란 어려울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모리코네가 친히 지휘하여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들에 빠져보는 것도 당신 자신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는 일이 될 듯싶다(자세한 공연 문의: (주)옐로우나인, 02-3444-9969).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엔니오 모리코네는 ‘영화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영화음악계의 모차르트’ 등 현대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다. 그동안 만든 음악만 해도 (본인조차 셀 수 없을 정도로) 400, 500편이라고 하니 일단 그 숫자에 압도된다. 더 놀라운 것은 다작이라고 해도 음악적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화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드라마, 호러, 스릴러, 예술영화, 정치영화 등. 음악 장르와 색깔도 마찬가지다. 바로크나 현대음악에 이르는 클래식 계열 음악부터 록, 재즈, 블루스의 대중음악, 나아가 인간의 목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그는 영화음악의 사운드로 올려놓았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각인적 멜로디를 작곡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통해 영화음악 시작

1928년 이탈리아 태생의 엔니오 모리코네는 열두살 무렵 산타 시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 지휘를 수학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작업을 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가의 궤도에 들어서게 된 것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통해서다. 한국어로 번역된 표현으로는 ‘무법자’ 시리즈, 영어식으로 하면 ‘Dollars’ 연작을 통해 그는 레오네 감독의 단짝 작곡가가 됐다.

당시까지 할리우드에서 통용되던 관습적 웨스턴을 벗어나 레오네식 서부극이 탄생한 데에는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이 회자됐기 때문에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른바 (처음에는 비아냥의 단어였던) ‘스파게티 웨스턴’ 양식에 중요한 한획을 그었다는 점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방랑의 휘파람’, 빠라빠라빠~ 하고 시작하는 <석양의 무법자> 주제곡은 새로운 서부극의 테마송으로 등극했다.

<황야의 무법자>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편의상 영어제목만 표기, 1964)를 필두로 하여,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그리고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까지. 그는 그때까지 할리우드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만연해 있던 스타일, 즉 풍부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몇몇 주도적 악기를 독특하게 사용했다(이는 적은 예산 편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어떤 경우엔 음악을 영화 촬영보다도 미리 작업해, 그 음악을 현장에서 촬영을 위해 쓰기도 했다. 용수철처럼 튕기는 주스 하프(jew’s harp), 천상과 ‘귀곡성’을 오가는 성악풍 보컬, 하모니카와 피콜로, 허풍스러운 오르간, 벤처스풍 일렉트릭 기타 등 모리코네는 악기 선택과 연주도 특이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소리들을 채집하여 당시로서는 기이한 사운드트랙을 탄생시켰다. 휘파람 소리나 원초적인 남성 보컬, 고음역의 여성 코러스 등 인간의 (목)소리를 악기의 음향효과처럼 구사한다든가 채찍 소리, 종소리나 동물 소리까지 등장시키는 등 일상의 실제 소리를 음악 사운드로 변환해 실험의 단계를 높여갔다.

특이한 악기 선택과 사운드의 실험으로 기이한 트랙 만들어

세르지오 레오네 외에도 오랫동안 짝을 이룬 이탈리아 감독 친구로는 <시네마 천국>(1988),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말레나>(2000) 등에서 호흡을 맞춘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있다. 모리코네는 또한 좌파 성향의 감독의 작품에도 소리의 혁신으로 화답했다. 질로 폰테코르보(<알제리 전투>), 엘리오 페트리(<노동자 계급은 천국으로> 등)를 비롯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혁명전야> <1990>),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매와 참새> <살로, 소돔의 120일>) 등 혁명과 폭력, 섹스와 종교 등에 대해 사실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그려낸 이탈리아 감독들의 문제작들을 영화음악으로 맡았다. 이외에 다리오 아르젠토의 <수정 깃털의 새>나 존 카펜터의 <괴물> 같은 호러 계열의 영화들, 그리고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욕망의 낮과 밤>)를 비롯해 브라이언 드 팔마(<언터처블> <전쟁의 사상자들> <미션 투 마스> 등), 롤랑 조페(<미션> <시티 오브 조이> 등), 올리버 스톤(<유턴>)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감독과 작업해왔다.

1980년대쯤 되면 모리코네는 이전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할리우드로 향하여 대중적인 작곡가가 된 그의 행보를 두고 68세대의 열패감과 연관짓기도 했는데, 과잉적 해석이든 오도적 해석이든 그의 본래적 음악 색채는 유지하면서 이를 좀더 확장해나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낭만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테마는 더욱 아름다운 광채를 드리우고, 종교적 숭엄함이 서려 있는 주제는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에 실려 파급력을 발휘하게 된다. 도식화하면 전자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시네마 천국>이고, 후자는 <미션>(1986)이다.

할리우드에서 좀더 대중적인 행보

특히 <미션>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중세 종교음악, 남미의 향토민요,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 오보에 등의 악기를 사용해 장엄하고 숭고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면서 (물론 이전에도 모리코네가 썼던 스타일에서 나왔지만) 한층 실험적이면서도 이전보다 세련화된 음악들로 대중적이고도 세계적인 영화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었다. 다섯 차례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천국의 나날들>(1978), <미션>, <언터처블>(1987), <벅시>(1991), <말레나>(2000)). 가령 <미션>이 후보에 오른 해에는,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니었던 <라운드 미드나잇> 음악에 음악상이 돌아갔다. 음악 작업을 의뢰받았으나 시간상 작업할 수 없어 거절한 <일 포스티노>는 모리코네에게 영향받은 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가 작업했는데, 바칼로프는 이 영화로 오스카를 수상했다! 물론 아카데미상에 대한 비판이야 늘 있었던데다가, 이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모리코네의 음악적 업적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아카데미는 2007년 그에게 공로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그간의 ‘홀대’를 보상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말레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오랜 세월 많은 음악을 작업해온 다작의 작곡가이고 다장르 작곡가이다. 미국이나 자국의 영화음악 이외에 여러 유럽 지역의 영화와 TV음악 등을 맡아왔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적 원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그것은 모리코네 자신이 두루 섭렵해온 클래식 음악에 있다. 바흐의 바로크음악부터 스트라빈스키나 슈토크하우젠의 현대음악까지. 특히 현대음악의 무조적 불협화적 사운드는 그의 음악을 실험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록, 재즈, 블루스 같은 영미권 대중음악과 그의 조국 이탈리아의 오페라, 민요, 대중음악 장르들도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에 있어 원천적 자양분이 되어왔다.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오가는 다양성

오랜 음악 동료들도 있다. 기타와 휘파람의 주인공 알레산드로 알레산드로니, 여성 보컬 에다 델오르소 등은 오랫동안 모리코네와 작업해온 지음(知音)들이다. 또한 모리코네는 포르투갈의 파두의 신성 둘체 폰테스 같은 월드뮤직 뮤지션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음악인들이 모리코네의 음악을 리메이크하거나 헌정하며 찬사를 보냈다. 첼리스트 요요마, 재즈 현대음악가 존 존(John Zorn)부터 세계적인 팝스타 셀린 디온, 퀸시 존스, 스팅, 에릭 클랩턴 등의 추앙을 받았으며,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 힙합 뮤지션 제이-지 등은 자신의 음악에 모리코네의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모리코네는, “composed, arranged and conducted by Ennio Morricone”라는 공식을 고집한다. 그의 신념은 작곡과 편곡은 물론 지휘까지 영화음악가가 모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모리코네는 다른 영화음악 작곡가들과 달리 지휘에도 몰두하여 콘서트 음반들을 틈틈이 발표하기도 했다. 영화음악을, 그의 어휘를 빌리면 “절대 음악”이라는 경지까지 끌어올리려는(혹은 이와 등치시키려는) 비전의 소산일까. 최근 모리코네는 특히 국제적인 콘서트 무대를 마련하여 순회공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뒤늦게나마 한국에서도 그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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