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기억 속의 첫 <샤이닝>은 굉장히 어두운 영화였다. 몇 차례의 비디오 카피의 결과물이 낡은 프로젝터의 뿌연 조도를 통해 영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 오버룩의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나오는 피가 복도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정말 어둡고 검게 느껴졌다. 잭이 도끼를 들고 아들 대니를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쫓아가는 미로공원의 장면은 너무 어두워 스테디캠의 존재감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새까만 장면이었다. 그 이후 다시 보게 된 좋은 화질의 <샤이닝>은 시각적으로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오버룩 호텔의 곳곳은 귀신이 나타날 때도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조명 아래서 플랫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밝은 조도의 영화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 <샤이닝>은 아주 어두운 공간감을 보여준 영화라고 기억된다. <샤이닝>은 요즘의 공포영화들이 과도한 어둠을 통해 표피적인 어둠을 추구하는 데 비해, 어떤 외부의 소음도 차단된 적막의 고립감을 구체적인 사운드의 반복과 신경질적인 음악을 통해 표현한다. 일반적인 공포영화에서 오버룩 호텔과 같이 긴 복도가 나온다면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모두 끄고 복도 벽에 작은 핀조명들을 달아 어둡고 어두운 공간으로 보여질 것이다. <샤이닝>은 오히려 깊은 산속에 고립된 한 가족이 선택할 만한 밝은 형광등 조명을 설정한다. 그리고는 잭이 그 넓은 로비 공간에서 혼자 거대한 벽을 향해 테니스공을 던지고 받는 반복적인 사운드와 아내 웬디가 밤새 글을 쓰다가 늦잠을 자고 있는 남편 잭에게 줄 식사를 담은 무빙카트의 덜컹거리는 사운드를 선택한다. 아들 대니가 세발자건거를 타고 복도를 누비는 낮은 레벨의 스테디캠이 보여주는 공간감과 함께 선택된 카펫 위와 마룻바닥을 번갈아 달리는 자건거 바퀴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어둠과 두려움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샤이닝>이라는 공포영화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들과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언제 튀어나올까 기다리게 하는 긴장감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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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의 긴장감 넘치는 공간을 완성하는 조명과 사운드
글 정재은 (영화감독·<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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