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007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는 이 물음에 각각 다른 답을 하고 있다. 007 시리즈가 즉물적이고 유려한 선형적인 형태와 은색 톤을 주조로 한 기계미학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 건축의 순백을 유쾌함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배트맨> 시리즈는 시카고 창으로 대표되는 고층 빌딩군과 그 그늘로 펼쳐지는 포스트모던 클래시즘 건축의 우울을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는 모두가, 모든 것이, 유쾌하다. 건물의 창도 유쾌하고, 소파도 유쾌하며, 가장 은밀해야 할 첩보부의 사무실도 창은 없지만 전체가 알루미늄이나 제물치장 콘크리트의 순수함으로 빛난다. 가장 음침해야 할 악당까지도 순진한 유쾌함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결벽증을 성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 유쾌함을, 이 순결함을 오염시키는 존재가 바로 제임스 본드다(그래서 나는 악당 편이 된다). 007 시리즈에서 건축은, 모더니즘의 영원불멸을 구가한다. 반면에 <배트맨> 시리즈의 모든 인물은 우울하다. 건물도 우울하고, 영웅도 우울하며, 영웅의 여자도 우울하다. 무미건조하게 반복되고 있는 빌딩들의 연속창들, 성주와 집사의 중세적 구도, 두터운 외투에 목을 움츠린 시민들, 고모라와 소돔을 연상시키는 이 고딕의 무덤 같은 거리는 그대로 모더니즘 건축의 무덤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거기에서 유일하게 우울을 표현하지 않는 자는 악당뿐이다. 고담시는 악이 횡행하고 있어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악이 없어서 우울하다. 이 우울을 깨는 유일한 자가 바로 악당이다(그래서 나는 악당 편이 될 수밖에 없다). 007 시리즈가 인간의 원죄를 외면한다면 <배트맨> 시리즈는 인간의 원죄를 직시한다. 거기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과 모더니즘 건축의 분열(포스트모던 클래시즘 건축)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현대 건축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건축 디자인의 도구가 디지털화하면서 자하 하디드(동대문운동장 재건축), 프랭크 게리(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헤르조그와 드메롱(냐오차오)이 보여주듯이 007 시리즈의 공간이 대세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우리도 제임스 본드처럼 휴대폰, 노트북, 아이패드 등의 수많은 가제트로 바로 그 미래에 다가서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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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과 <배트맨> 시리즈의 유쾌한 신세계와 별 볼일 없는 미래
글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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