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는 회화사에서 주로 간송학파를 중심으로 널리 회자되어 온 것이지만, 진경건축이나 진경영화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실제 컨텍스트를 창작의 배경으로 삼는 태도를 가리키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진경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경 창작인인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서 또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도시라면 으레 있을 법한 산비탈의 한 동네. 감독의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아파트처럼 하나도 특이할 것 없는 장소다. 하지만 장소와 스토리가 갖는 관계의 수상한 점성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높아만 간다. 도준 엄마에게 진태가 한 말, “동네가 이상해. 꼭 연극 무대 같아”는 그 끈끈함에 대한 결정적 표현이다. 그리고 사건의 단서 또한 좁은 골목길에서 불편하게 붙어 있는 건물간의 교차하는 시선 속에 존재한다. 결국 그 이야기는, 바로 그 장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그 동네는 더이상 평범하지 않다!
이러한 진경적 창작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있는 듯하다. 그 처음은 대상에 대한 지루할 만큼의 관찰이다. 그 다음에는 그 관찰에 기초한 내용적 전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결국 대상 자체를 초월해버리는 것이다. 처음 두 단계까지 가는 창작인들은 많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는 결국 불의 심판과도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세상에 평범한 동네라는 것은 없다. 모든 공간과 장소는 어딘가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상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흔들어놓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다. 그것이 ‘진경적 시선’의 힘이다. 그 힘은 200년 전 겸재 정선에게나 지금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유효하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우리 동네의 탐험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