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곳이 영화다
2011-07-28
미국영화들에서 숱하게 모습 드러낸 브루클린 다리

삶이 영화 같은 순간이 있다. 물론 영화도 장르에 따라 다르다. “홍상수 영화 같은 장면”이 있는가 하면 “데이비드 린치 영화 같은 장면”도 있게 마련. 그 모든 다양한 장면들을 아울러, 우리는 “영화 같다”는 한마디로 퉁친다. 삶이지만 흔연한 삶과는 뭔가 다른 순간을 일컫기에 그만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겠지. 내가 삶에서 문득 분리되는 느낌. 내가 있는 곳을 떠난 내가 지금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느낌. 내 위에 1cm쯤 떠 있는 나. 삶은 한편의 영화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브루클린 다리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산책하듯 걸으면 한 시간쯤 걸리는 그곳이, 내게는 한편의 영화 같았다. 잔잔한 로드무비 같았다. 발을 디뎠을 때 환하던 사위는 걸으면서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브루클린 다리 상영시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마지막으로 다리에서 발을 떼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해가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로 지는 순간의 딱 일분을 나는 캠코더에 담아놓았다. 일분이지만 내가 걸었던 한 시간을 모두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돌아와 수없이 그 동영상을 돌려보며, 내가 보았던- 아니, 겪었던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에 나왔던 곳을 찾아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영화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일까 아니면 영화는 가짜 삶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깨달음일까. 그곳에 간 이가 무엇을 바랐든 간에, 브루클린 다리는 결국 영화도 삶의 하나의 형태일 뿐이라고 말한다. 뉴욕 사람들의 삶을 받쳐주는 오래된 배경으로서의 브루클린 다리는 영화의 낯익은 장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에게 무심하다. 그때는 못 느꼈으나, 루스벨트섬으로 넘어가는 트램웨이에서 나는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다. <스파이더맨>의 한 장면을 조악하게 프린트해 파는 기념품숍이 있는 케이블카는 그저 ‘관광지’일 뿐이었다. 브루클린 다리에 비하면.

그곳이 어느 영화에 나왔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 옛날 드나들던 술집 벽에 붙어 나달나달 낡아가는 포스터 안에서 보았던, 공장지대 저 너머의 철골근육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미래의 뉴욕을 상징하는, 황폐한 풍경 속에 끊긴 채 서 있던 초연함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 괴물이 몸부림치며 부수던 풍경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 모든 영화에 어떻게 걸쳐 있건 간에 브루클린 다리는 그 풍경들과 무관하니까. 브루클린 다리가 출연한 영화는 딱 한편, 산책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그 순간에만 상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스스로 감독이고 주연이고 배경이고 상영관인, 영화다. 그것의 이름을 ‘삶’이라 불러도 괜찮겠다.

글·사진:박사 북칼럼니스트,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여행자의 로밍백서> <여자들의 여행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