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전투를 보다 피라미드의 안부가 궁금했다. 중국과 프랑스를 지나 이집트에 상륙한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로봇군단은 세계 7대 미스터리야 어찌되든 뛰고 날고 부수고 던지는 육탄전을 벌였다. CG와 합성이 만들어낸 신천지였겠지만 거대한 디셉티콘이 피라미드의 능선을 밟기 시작했을 땐 눈이 조금씩 바스러지는 돌무덤을 쫓아갔다. 로봇의 기원전까지 거슬러 탐하는 마이클 베이의 거대한 3D 세계에서 수천년 문명은 그저 로봇의 놀이터가 됐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그리고 사막.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그린 이집트는 지구의 역사가 펼쳐지는 광활한 무대였지만 카이로 공항에서 마주하는 이집트는 의외로 작고 복잡한 길이 매력적인 곳이다. 사방이 모래뿐인 기자 지구도 돌과 모래가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길이 신비롭다. 타고 온 차에서 얼른 내려 걷게 된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낙타지기, 스핑크스 앞 레스토랑을 맴돌며 관광엽서를 파는 꼬마 등 삶의 흔적과도 만난다. 모랫길 곳곳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이들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난 헐벗은 건물에 산다. 기자 지구를 조금만 벗어나도 부서진 건물, 탁한 매연을 뿜는 자동차가 뒤섞인 마을이 나온다. 세계 7대 미스터리도 이들에겐 생활의 터전이다.
밖에서 보는 피라미드도 볼거리지만 10달러 정도만 지불하면 이곳을 들어가볼 수 있다. 기자 지구의 키옵스(Kheops) 피라미드는 시간과 인원을 제한해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단 각오는 해야 한다. 입구는 물론 통로의 높이가 1m 남짓이라 허리를 굽힌 채 이동한다. 게다가 내부는 매우 덥고 습하다. 입구를 지키던 검표원이 폐나 호흡기가 좋지 않으면 자제하라고 수차례 경고를 한다. 10여분 통로를 따라가면 두평 남짓한 공간이 나온다. 가운데는 미라를 모셔놓은 관이 있다. 들어온 길이 힘들어 잠시 맛보는 너비에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굽힌 채 10여분을 걸어나온다. 세계 7대 미스터리의 초라한 내부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무덤이다. 쾌적한 관광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오만이다.
이집트박물관을 지나 카이로 시장을 걷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확성기 소리가 들리더니 이슬람 기도문이 쏟아졌다. 12시 무렵 사람들이 곳곳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함께 있던 가이드가 이집트에선 하루에 서너번 공식적으로 기도 시간을 알린다고 했다. 시장은 오밀조밀했다. 창 하나를 가방과 옷가지로 도배하듯 진열한 가게가 있는가 하면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도 있었다. 사진촬영을 단속하는 경찰의 모습도 보였다. 이집트 카이로는 관광의 도시다. 할리우드가 탐낼 만큼 장대한 역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 피라미드 돌길 뒤편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있다. 어느 한때 끊이지 않고 다사다난하게 이어진 삶의 흔적은 CG가 아니다. 이집트 여행은 관광엽서, 블록버스터의 쾌감에 가린 이곳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닐까. 이집트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