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방향>에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돌아온 전직배우 중원을 연기했다.
=감독님이 농담을 좀 심하게 하신 거지. (웃음) 심지어 촬영 전날 술 마시면서 이야기했던 게, 다음날 내 대사로 쓰여 있기도 했다. “여자는 극단을 짚어주면 다 믿게 돼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인데, 내가 돈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더라. (웃음)
-그런데 베트남에서 하던 사업이 정말 망한 건가.
=일은 좀 남아 있다. 잘나갈 때는 기사가 나갔는데, 망한 건 기사가 안 나가서 모르는 거다. (웃음) 한때 루머도 많았다. 김의성이 베트남에서 50억원을 벌었다고, 돈을 주체 못할 지경이라고.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지.
-공식적인 작품 기록은 1999년 <이프>가 마지막이다. 베트남으로 갔던 이유가 뭐였나.
=내가 연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생명연장을 하다간, 결국 초라하거나 비참해질 수 있을 것 같더라. 평소 베트남에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큰 결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배우를 그만두었으니까, 간 거였다.
-베트남에서 시작한 사업이 한국영화 배급이었다고 들었다.
=아는 게 그거뿐이었으니까. (웃음) 어려움이 많더라. 나중에는 판권 가격이 오르고 경쟁자들도 생겼다. 그래서 아예 한국의 선진적인 문화를 녹여서 뭔가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편의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나도 재밌었지만 성과도 좋았던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보냈던 10년간, 홍상수 감독과 연락한 적은 없었나.
=권해효를 비롯한 친구 몇명하고만 연락했었다. 먹고살기도 바빴고, 그때는 몰랐지만 연기에 미련이 있어서 영화쪽 사람들을 피한 것 같다. 그러다 지난해 해효의 연락을 받고 홍 감독님과 함께 만났다. 그때 내가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직업 연기자로 살지는 않더라도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극중의 영호가 중원을 배우라고 소개하자, 중원이 짓는 난처한 표정이 있다. 상당히 리얼해 보였다.
=리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웃음) 연기를 안 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나를 배우로 소개하는 게 정말 민망하고 창피했다. 내가 자랑할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쌓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북촌방향>에서 첫 촬영이 한정식집신이었다고 들었다. 11년 만에 연기를 한 순간이었다.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홍상수 감독의 현장이어서 더 편했던 것 같다. 며칠 전에 찍다가 다시 찍는 기분이었다. 감독님도 “그냥 배우 계속해라,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살은 좀 빼라” 그러시더라. (웃음)
-데뷔작의 배우로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에 나온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
=여전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다른 영화 같다. 한국의 오래된 영화사와 부족한 제작비와 말 안 듣는 스탭, ‘이게 뭐야?’라고 말하는 배우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것 같은데, 그게 다 가짜 같다고 여기던 불만이 많은 청년이 함께 만든 영화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이제는 영화를 조각칼로 일일이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장인의 풍채가 느껴진다. 홍 감독님도 데뷔작 때는 여리고 불안한 천재처럼 보였다면, 이제는 인간문화재처럼 보인다. (웃음)
-<북촌방향> 시작 전에는 직업 연기자까지는 생각 안 했다고 했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다.
=지난 4월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에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제는 정말 배우로 살고 싶고, 배우로 먹고 살자는 생각이다. 당장은 양아치만 아니라면 누구든 같이 일하고 싶다. 물론 홍 감독님의 영화에도 계속 출연하고 싶다. 이런 예술가의 작품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나. 참여한 다른 배우들도 그런 생각을 할 거다. 하지만 감독님에게 일대일의 관계를 기대하는 건 상처받기 좋은 일 같다. 내가 살찌고 망가졌다고 영화에 그대로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웃음) 일대일의 관계는 아니고. 우리 모두 다 같이 인간문화재의 작품에 관심을 갖자는 정도? 그게 맞는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