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그동안 우린 그를 오해했었다
2011-12-22
글 : 김도훈
지금 우리가 스필버그에 관해 이야기 해야 하는 까닭
1979년작 <1941>의 잠수함 세트 속에서 주연배우 미후네 도시로, 크리스토퍼 리와 함께한 스티븐 스필버그(가운데).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2011년은 1993년 이후로 스필버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가장 좋은 해일지도 모릅니다. 1993년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동시에 내놓았습니다. 올해 스필버그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과 <워 호스>를 동시에 내놓습니다(<워 호스>는 국내에서 내년 2월2일 개봉예정입니다). 하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실험하는 블록버스터, 다른 하나는 좀더 진지하고 고전적인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스필버그의 1993년과 2011년은 닮은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3년과 2011년의 스필버그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꽤 다릅니다. 90년대의 스필버그는 딱 절반 정도만 공인받은 거장이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스필버그가 특수효과를 등에 업은 보수적인 블록버스터의 첨병이자 싸구려 감상주의 예술가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2011년의 스필버그는 전례없이 어두운 걸작 <우주전쟁>을 이미 내놓은 작가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공인받은 예술가입니다.

90년대 싸구려 감상주의 vs 2011년 작가

2011년이 스필버그를 이야기하기 좋은 해인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드디어 스필버그의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개봉한 두편의 영화를 다시 꺼내봅시다. <황당한 외계인: 폴>은 <미지와의 조우>와 <E.T.>에 오마주를 바치기 위해서 만든 영화나 다름없습니다. 감독 그렉 모톨라는 아예 열성 스필버그 베이비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결투>와 <슈가랜드 특급>을 다시 보며 스필버그가 미국 서남부 풍경을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참고했지요. 또 <미지와의 조우>와 <E.T.>를 다시 보며 내가 처음 그 영화들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2011년의 스필버그 영화는 J. J. 에이브럼스의 <슈퍼 에이트>입니다. 이건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80년대 오락영화들에 대한 오마주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앰블린 영화를 21세기에 다시 조립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재미있게도 얼마 전 프랑스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슈퍼 에이트>를 2011년의 베스트 8위에 선정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슈퍼 에이트>가 <트랜스포머> 같은 여름 쓰레기들에 대한 진정한 해독제라고 평가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때 박스오피스 성적만을 위해 시네마의 의미를 파괴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스필버그의 70~80년대 블록버스터를 곧이곧대로 리메이크하다시피 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해독하는 일종의 안티-블록버스터로 평가받고 있으니까요. 이런 재평가는 할리우드와 유럽권에서만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는 선배 감독들이 클리셰처럼 이야기하던 유럽 작가들의 이름 대신 스필버그를 영감의 원천이자 영화적 아버지로 언급하는 신인 감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0년 우리가 가장 주목한 신인인 <짐승의 끝>의 조성희 감독과 <불청객>의 이응일 감독은 공히 스필버그의 이름을 꺼내놓았습니다. 아무런 수줍음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근심을 거두고 스필버그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90년대까지만 해도 스필버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할리우드 감상주의를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습니다. <우주전쟁> <뮌헨> 이후 스필버그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할리우드 감상주의에 대한 어떠한 혐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작가로 도약한 것일까요? 스필버그의 초기작을 완전히 복권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의 초기작을 조금 오해했던 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E.T.>에서 스필버그가 그려낸 교외의 풍경은 그 시절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쓸쓸합니다. 거기에는 부권의 복권을 기다리는 미숙한 피터팬의 마음이 아니라 어쩔 도리 없이 붕괴되는 가족의 초상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가족의 연대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돌아보건대 그건 감상주의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의 종말에 대한 묵시록적 기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토록 스필버그를 옭아매고 그토록 비평가들이 손쉽게 사용하던 단어, 피터팬 신드롬은 또 어떤가요. 스필버그의 이름에 피터팬 신드롬을 호(號)처럼 삽입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피터팬 신드롬을 벗어난 것이 <쉰들러 리스트> 혹은 <우주전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후크>는? 지금은 누구도 그 영화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스필버그의 팬들에게 <후크>는 볼드모트 같은 존재입니다.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필버그는 일생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피터팬 영화 <후크>를 찍은 다음 자신의 무의식을 옭아매던 피터팬 신드롬을 스스로 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피터팬이 켄싱턴가의 창밖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내 영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가 네버랜드로 가자마자 영화는 아동용 연극처럼 돼버렸어요.”

진화하는 할리우드의 마지막 고전영화 감독

스필버그는 끝없이 성장하고 또 진화하는 드문 감독입니다. 그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던 뉴아메리칸시네마의 거장들을 한번 불러내봅시다. 80년대의 스필버그는 종종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사람들은 제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감독을 꼽을 땐 스코시즈와 코폴라의 이름을 꺼내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재능을 탕진하고 마틴 스코시즈가 점점 특유의 에너지를 잃어가던 시점에 스필버그는 몇번이나 도약했습니다(<쉰들러 리스트> <A.I.>와 <우주전쟁>을 우리는 세번의 거대한 도약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일관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우주전쟁>과 <뮌헨> 이후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내놓은 이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영화라기보다는 조지 루카스의 영화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스필버그를 찬양하기 위해 루카스를 깔아뭉개는 게 온당하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를 사랑하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진화하는 감독인 동시에 할리우드의 마지막 고전영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의 블록버스터들은 (심지어 그가 제작하긴 했지만) 마이클 베이로 대변되는 21세기의 블록버스터와는 다릅니다. 그는 블록버스터를 발명했으나 그 자신은 점점 블록버스터의 의미와 거리가 먼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그의 영화들은 오히려 전통적인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 고전영화에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한때 우리는 스필버그가 가족용 블록버스터와 묵직한 시대극을 만드는 자아분열의 작가라고 여겼습니다. 명확하게 분리된 듯했던 두 세계는 서서히 하나로 합쳐졌고, 스필버그가 차기작으로 시대극 <링컨>과 로봇과 인간의 전쟁을 다룬 묵시록적 SF <로보포칼립스>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사실은 더이상 자아분열의 아이러니가 아닙니다. 그건 그저 스티븐 스필버그일 따름입니다.

70년대 말을 떠올려봅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데뷔작 <슈가랜드 특급>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고,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폴린 카엘은 젊은 스필버그가 미국영화를 새롭게 써나갈 거라고 예언했습니다. 장 르누아르는 <미지와의 조우>가 “시인의 영화”라고 열렬히 칭찬했습니다. <레이더스>와 <E.T.>의 80년대가 오자 사람들은 그 의견을 마음속에서 완벽하게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칸영화제, 폴린 카엘, 무엇보다도 장 르누아르가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근심을 버리고 스필버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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