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전설을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주목의 대상이다. 지난 수십년간 할리우드의 화려한 역사 제일 윗줄에 놓인 이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설이 되어버린 만화 <땡땡의 모험>을 찍는다는 이야기에 설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작자 에르제의 유언처럼 스필버그 이외에 누가 감히 이 역사적인 작품에 손을 댈 수 있겠는가. 단지 그가 거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스필버그는 둘도 없는 노련한 모험가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사건에 뛰어드는 열혈기자 땡땡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데 이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80년의 세월을 건너 드디어 스크린으로 옮겨진 <땡땡의 모험>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너무도 스필버그다워 어떤 운명마저 느껴진다.
현대 미국의 신화는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두 남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화를 대중 신화의 전당으로 끌어올린 두 사람은 <인디아나 존스>를 통한 단 한번의 협력 뒤로 다른 행보를 걸었다. 조지 루카스가 스스로 구축한 신화를 더욱 견고히 할 때, 스필버그는 그곳을 뚜벅뚜벅 걸어나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덕분에 숱한 실패를 반복했고 형편없는 영화들을 찍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할리우드의 신화가 되었다. 어떤 창의적 에너지를 발휘한 거장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세월마저 비껴간 듯 스필버그의 행보는 오히려 21세기에 접어들어 더욱 과감하고 활기차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그의 그림자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활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의 선택과 뛰어난 3D 효과
무한한 열정과 창의력의 결과라 결론내리면 손쉽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늘 최신의 기술들을 활용해왔지만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가장 안정감있게 혁신을 이용해온 쪽에 가깝다. 이를테면 스필버그는 블록 조각을 조립해서 모두가 칭찬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 스스로 새로운 블록을 찍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모험가는 모험가이지만 주변의 도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맥가이버에 가깝다고나 할까.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역시 그러한 유희와 안정감의 연장에 있다. 그는 늘 기술을 갈망한다. 최전선에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쪽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기술을 개발한 이도 모르는) 최선의 답을 이끌어내왔다. 최대 다수의 즐거움을 위한 해체와 조합, 아마도 그것이 스필버그를 스필버그답게 해온 미덕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에야 <땡땡의 모험>을 영화화한 것은 만족할 만한 기술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퍼포먼스 캡처 영화들을 보고 드디어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는 그의 말처럼 전설이 된 이 고전만화는 자신을 온전히 구현할 기술을 필요로 했다. 물론 실사로 만들 수도 있었다. 이미 5편의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땡땡의 모험>은 반드시 애니메이션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재현이 가능한 지금에서야 이를 실행했다고 봄이 마땅하다. 그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그는 최고의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작품 속 3D 기술은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실사와는 다른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이상적인 형태로 포착하였다. 먼지 하나까지 도드라져 보이는 3D 효과에서부터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시도하기 힘든 카메라 시점들, 마지막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짜릿함은 지금 현재 도달할 수 있는 재현 기술의 정점일 것이다. 하나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 특별한 까닭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스필버그의 이상이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땡땡의 모험>은 이미 전설이다. 수많은 원작 팬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이 그동안 구축해온 지위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은 없다. 스필버그 역시 제작 단계에서부터 제일 염두에 둔 지점은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애니메이션 방식이 힘을 발한다. 원작 <땡땡의 모험>은 이미 현실이 아닌 만화의 세계다. 실사가 그것을 아무리 모사하려 한들 ‘다르다’는 인식의 차이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그것도 지금과 같은 정밀한 수준의 재현이 가능한 애니메이션이라면 그것을 한없이 가깝게 닮아갈 수 있다(물론 일치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몇몇 영화 속 캐릭터는 지나친 정밀함으로 이질감을 남긴다). 이를 위해 애니메이션에 도전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모험가적 기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새로운 영역이라도 발을 들이는 과감함.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곧 스필버그의 모험담이기도 하다.
최대 다수의 즐거움을 위한 행보
스필버그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예술가적 기질, 더불어 흥행감각이라는 동시에 지닐 수 없는 얼굴들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흐르는 것은 영화라는 유희, 즐거움에 대한 순수함이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라면 새로운 도전이든, 기존의 재활용이든, 조합이든, 결합이든, 융합이든 가리지 않는다. 창의적 재활용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에르제의 원작 중 <유니콘호의 비밀> <라캄의 보물> <황금 집게발 달린 게>를 버무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다. 땡땡의 단짝 하독 선장을 등장시키기 위해 <황금 집게발 달린 게>가 필요했고 이야기를 영화적인 형태로 마무리짓기 위해 <라캄의 보물>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각색이다. 하지만 이처럼 자르고 붙이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것이야말로 그의 전매특허다.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하나 독단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늘 관객 입장에서 상상한 즐거움이다. 원작 팬들의 기대가 큰 만큼 에르제 시대의 유머와 정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동시에 현재의 새로운 관객을 배려해서 최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창의적인 해석과 액션장면들을 내어놓는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도 저도 아닌 적당한 타협이 아닌가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의 신화가 된 힘은 바로 이와 같은 안정감에 있다. ‘Good, but not Great.’ 그야말로 할리우드 그 자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