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적 재미에 통달하다
2011-12-22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3인3색②- 이야기꾼으로서 스필버그
<슈가랜드 특급>

TV영화 <결투>와 영화 데뷔작 <슈가랜드 특급>(1974)으로 주목받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부분이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던 <죠스>(1975)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스타워즈>(1977)의 조지 루카스와 함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원흉인 동시에 할리우드의 신세기를 이끈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바로 전 세대, 아니 단지 몇살 위의 감독들과도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반은 반문화의 시대였다. 고전 할리우드의 세계는 무너졌고 실제 사회 역시 뒤죽박죽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이지 라이더>로 시작된 ‘뉴 시네마’는 <매쉬>와 <대부>로 이어지면서 할리우드를 바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걸작인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이 참패하면서 할리우드를 접수한 것은 프랜시스 코폴라와 마틴 스코시즈가 아니라 스필버그와 루카스였다.

이야기의 쾌감과 영화적 쾌감을 동시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원한 것은 무엇보다 흥행에서의 성공이었다. 그들은 영화적으로 <대부>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흥행성적으로 압도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대중성’ 측면에서 대단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슈가랜드 특급>을 본 폴린 카엘은 스필버그가 ‘연출가 중 대단히 드문, 타고난 엔터테이너’라고 칭찬했다. 그 말은 곧 ‘숏을 배열하고 이야기를 우아하고 효과적으로 전개시키는 데 천재’라는 말과도 같았다. 스필버그는 어딘가에 중독되거나 열광하면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감독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다수의 요구에 맞춰낼 용의가 있는 ‘상업적인’ 감독이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영화는 ‘<이지 라이더>의 반문화적인 관객과 <타워링>의 중산층 관객 구분을 초월’하여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조지 루카스는 “나는 순수한 영화를 지향한다. 나는 내러티브에 관심이 없다.… 나는 매우 시각적인 연출가이며 사상보다는 감정을 추구하는 연출가다”라고 말했다. 루카스의 최고 히트작이자 전설이 된 <스타워즈>조차도 ‘이야기’가 탁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루카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활용하고,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적절하게 투여했을 뿐이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만들어진 <스타워즈>의 새로운 3부작이 젊은 날 썼던 그나마 활기찬 스토리에 비해 따분하고 어리석다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루카스와 다르다. 스필버그는 이야기가 갖는 쾌감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더욱더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죠스>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E.T.>를 거쳐 <쥬라기 공원>까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가벼운 이야기를 신나는 영화적 쾌감으로 최대한 상승시킨 작품이다. 50년대의 SF영화나 모험영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적인 장면과 장치들을 가득 채워놓았다. 스필버그를 이야기의 연금술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이야기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필버그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영화적인 이야기다. 흥미진진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보지 못한다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

스필버그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쉰들러 리스트>의 이야기가 훌륭했던가? 논쟁적인 쉰들러라는 인물을 그저 영웅으로 만드는 보편적인 휴머니즘뿐이지 않았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어떤가. 가장 기억나는 것은, 그 장면만으로도 ‘인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노르망디 상륙 당시의 리얼함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도전하려 했던 <A.I.>는 ‘이상한 나라의 로봇’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하고 얕았다. 스필버그는 이야기 자체에서 심오한 캐릭터와 사상을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이 아니다. 연륜이 있기에,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서 세월의 지혜를 가끔은 느끼기도 하지만. 혹은 ‘영화’ 자체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우주전쟁>이나 <뮌헨> 같은 영화에서 오히려 경탄하기도 하지만. 스필버그가 제작한 드라마 <폴링 스카이>와 <테라 노바>가 심심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시각적 쾌감이 덜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는, 인물과 이야기가 화끈하거나 섬세하지 못해 지루하고 상식적으로 흘러간다.

대중의 욕망을 읽고 맞춰내는 감각

스필버그의 성장 과정도 그렇게 비교적 심심했다. 성인이 된 이후 특별한 굴곡이나 좌절을 겪어본 적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너드’였다. 잘생긴 것도 아니고, 힘이 세지도 않은 유대인 소년. 그래서 영화에, 만화에 푹 빠져 있었고 일찌감치 자신의 미래도 영화로 정할 수 있었다. 일찌감치 유니버설에 스카우트되어 안정적으로 연출에 뛰어들 수 있었고, 코폴라와 스코시즈의 그룹과 어울릴 수는 있었지만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조지 루카스와는 달리 ‘영화사의 제작자들에게 보호받으며 성장한 제도권 출신’으로 여겨졌다. 부모의 이혼 정도를 상처로 가지고 있던 스필버그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뒤늦게 히피 문화에 동질감도 느꼈지만, 본질적인 한계가 있었다. 스필버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베트남전 징집을 기피한 뒤 ‘영화 이외에는 예술, 책, 음악, 정치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밥 라펠슨이나 마틴 스코시즈처럼 되고 싶어 하면서도 간절하게 흥행 성공을 원한 속내도 있었다.

80년대 스필버그의 영화가 먹힌 이유 중 하나는 반문화에 대한 피곤함이었다. 80년대의 대중은 저항과 투쟁, 퇴폐와 향락, 분노와 좌절 대신 사라진 권위와 가족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원했다. 일종의 ‘내면에 보존된 순진함, 더 나은 자아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였고, 레이건과 부시의 보수주의가 흥했던 이유도 비슷하다. 스필버그는 그런 대중의 욕망을 부드럽게 달래면서, 영화적 쾌감을 최대한 밀어붙였다. 애초에 스필버그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영화작가가 되고 싶어 ‘예술영화’ 비슷한 것을 그토록 만들었지만, 그가 이룬 것은 아카데미용 영화일 뿐이었다. 그것만 해도 뛰어난 것이지만 마틴 스코시즈를 넘보기에는 걸어온 길 자체가 너무 달랐다.

하지만 뭐 어떤가. 스필버그는 정말 재미있고 뛰어난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에는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에 대한 감식안, 그리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구성하고 풀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스필버그를 당대 최고의 감독이자 엔터테이너로 만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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