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긴장감이 나를 정직하게 만든다”
2011-12-22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워 호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스티븐 스필버그
<워 호스> 촬영장의 스티븐 스필버그(오른쪽).

-할리우드 전성기의 고전영화를 보는 듯했다. 특히 존 포드 감독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영화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포드 감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일부러 그의 톤을 따라가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로케이션을 직접 보면서 대지와 하늘이 이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느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대지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이 캐릭터가 된 거다. 영국 시골 농부가 땅을 잃을까봐 걱정할 때 나오는 대지나 프랑스의 기름진 대지,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의 참호에서 대치하는 무인지대의 대지들이 모두 다른 의미로 표현된다.

-촬영 역시 당신의 다른 작품과 크게 다른 것 같다.
=자연을 캐릭터로 생각했기 때문에 클로즈업보다는 와이드 렌즈로 대부분의 촬영이 이뤄졌다. 내가 뒤로 빠지고 대지가 스토리를 말해주길 바랐다. 존 포드 감독도 이같은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이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감독들도 이런 방식을 따랐다. 로케이션 자체가 대단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방식을 따르게 된 거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많이 작업했지만 1차대전은 처음인 것 같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워 호스>를 전쟁영화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이야기라고 본다. 한 젊은이와 말 ‘조이’ 사이의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조이가 국적을 불문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위대한 희망과 거대한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본다. 말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은 거의 <오디세이>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제작과 연출까지 한 진짜 이유는 뭔가.
=나는 항상 그렇다. 어떤 작품을 접하면 나 자신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할 때는 그저 제작을 하는 데에서 그칠 수가 없다. 꼭 연출까지 해야 한다.

-이번 작품은 <E.T.>처럼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특정 관객층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R등급(17살 미만 보호자 동반)을 받았다. 물론 그 영화를 어린이들이 보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이번 작품은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녀들 때문에 어른들이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지 않을까.

-1차대전 당시의 상황을 무척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워낙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착수하기 전에 리서치를 했다. 1차대전은 기마를 주축으로 한 전쟁에서 현대전으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당시 400만∼500만 마리의 말이 뽑혀 전장에서 죽어갔다.

-연극을 본 관객은 이 작품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표현할지 의아해했다.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내가 왜 이 작품의 연출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연극을 본 많은 관객이 극중에서 말을 표현한 인형극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난 이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물론 인형극 기술에도 감동했지만 그보다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더 감동을 받았다. 마이클 모퍼고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연극화한 것처럼, 영화화도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말인 ‘조이’의 관점에서 작품이 진행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작업을 하면서 ‘조이’가 이럴 땐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늘 원작 소설로 돌아가곤 했다. 소설에는 관점 자체가 조이의 시각일 뿐 아니라 조이의 생각까지 나온다. 물론 이런 조이의 독백을 영화에 직접 도입할 수는 없지만, 프로덕션 기간에 무척 큰 도움이 됐다.

-알버트 역에 영화 출연 경험이 전혀 없는 제레미 어바인을 캐스팅한 이유는.
=가능성있는 신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드루 배리모어에게 <E.T.>를 끌어갈 수 있게 해줬고, 크리스천 베일에게 <태양의 제국>을 혼자서 짊어지고 가게 했다. 이들의 재능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안고도 모험을 한 거다. 신인들에게서 내가 찾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 제레미는 직관력이 뛰어났다.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뭔가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제작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베테랑 배우들이 제레미를 보듬어 안아주었다. 에밀리 왓슨과 피터 뮬란, 데이비드 튤리스, 이들이 모두 자신의 날개 안으로 품어준 거다. 사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다. 크리스천 베일 때도 그랬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배우 앞에 신참 배우를 데려다놓으면 늘 품어준다. 그것이 감독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더이상 긴장되지 않는가.
=당연히 긴장된다. 하지만 잘 숨기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 텐데 나 때문에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대사도 외우고, 그날 촬영분에 대해 생각도 해야 할 텐데. 그래서 내가 작업에 임하는 프로세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 아닌가.

-긴장감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긴장감이 없어진다면 아마 더 이상 연출하지 않을 것 같다. 긴장감이 나를 정직하게 해준다. 나는 자신감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매일매일 약간의 ‘모조’(mojo)가 있어서 촬영이 잘되길 바랄 따름이다. 물론 안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정말 힘들다. 하지만 ‘모조’를 찾는 날들이 올 때는 열린 가슴과 열린 심장으로 촬영에 임한다. 아무리 마케팅 테스트를 한다고 해도 영화가 성공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영화가 개봉되고 결과가 나와봐야 잘됐는지를 안다. 실패 역시 마찬가지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연출해온 방식이다. 그래서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는 것이 지금까지 나를 정직하게 지켜줬고, 나 자신이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깨도록 도와줬다. 그렇기에 공동 작업에 더 강하지 않나 싶다. 늘 주변 동료들에게 의지하고 협력하니까 말이다. 나는 늘 열려 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과 <워 호스>가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데 걱정되지는 않는지.
=물론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과 <워 호스>가 같은 시기에 같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개봉되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연출하지 않았다면 다른 감독이 했을 테고, 그럼 역시 크리스마스 때 두 작품이 겨뤘을 게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What the heck)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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