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전쟁영화가 아니라 러브 스토리
2011-12-22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워 호스> 뉴욕 현지보고

우리는 올겨울 두편의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보게 된다. 하나는 이미 개봉한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다른 하나는 오는 12월25일 미국에서 개봉하고, 내년 2월2일 국내 개봉하는 <워 호스>다. 심지어 <워 호스>는 ‘말’이 주인공인 모험극이다. 뉴욕에서 양지현 통신원이 갓 미국 시사를 끝낸 <워 호스>의 소식과 스필버그 인터뷰를 보내왔다.

<워 호스>의 제목에는 ‘전쟁’(Wars)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워 호스>가 전쟁영화가 아니란다. 정말 그럴까? 대답부터 하자면, 그렇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워 호스>가 “사랑의 희생을 다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워 호스>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자신의 말 조이를 되찾기 위해 희생하는 알버트와 생존하기 위해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조이 사이의 러브 스토리”다.

무언가를 잊으려 늘 술을 마시는 영국 데번 지방의 가난한 농부 테드는 돌투성이 척박한 땅을 갈아줄 힘센 말이 필요하다. 동네 경매장에 이웃들과 나온 그는 값싸고 보잘것없지만 힘센 말을 사는 대신 잘생긴 수망아지를 무리해 사고 만다. 그것도 자신의 농장 주인인 라이언스(데이비스 튤리스)를 제치고 말이다. 테드와 부인 로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수망아지의 자질을 의심한다. 하지만 아들 알버트는 말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반드시 조이를 훈련시켜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한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조이는 알버트에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둘 사이에 각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침내 부모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조이와 알버트는 밭을 일구는 데 성공하고, 한동안 가족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아무리 시골이라도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법이다. 전쟁 때문에 다른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테드는 결국 조이를 1차대전의 기마로 팔게 된다. 다행히 조이를 산 군인은 정직하고 말을 사랑하는 대위 니콜스(톰 히들스턴)다. 조이가 팔려간 것을 뒤늦게 알고 쫓아와 흐느끼는 알버트에게 그는 약속한다. 최선을 다해 조이를 지켜주겠노라고, 전쟁에서 만일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반드시 알버트에게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이때부터 조이는 기마에서 부상자 후송 마차 끌기, 대형 대포와 탱크 운반 등을 위해 끌려다니며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기나긴 여정에 오르게 된다. 어느덧 젊은 청년이 된 알버트 역시 조이를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다. 과연 이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이유는?

마이클 모퍼고가 쓴 1982년작 동명 원작 소설은 2007년 런던내셔널시어터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져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연이어 공연된 연극은 2011년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토니상 5개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모퍼고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1차대전 참전군인이 자신의 기마에 대해 너무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모퍼고는 1차대전 당시 영국에서만 100만 마리의 말이 기마로 차출됐지만 되돌아온 것은 6만2천 마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마이클 모퍼고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우정을 그린 <워 호스>를 썼다. 모퍼고의 원작은 연극화되면서 퍼펫티어(인형술사)가 조종하는 인형이 말을 표현하게 된다.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던 결정이 오히려 관객에게는 더욱더 ‘조이’에게 애정을 갖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영화 <워 호스>의 시나리오작가 중 하나인 리처드 커티스는 말한다. “연극을 너무 인상 깊게 본 일부에서는 말을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며 걱정하는 질문도 있었다. 하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진짜 말을 써야지.”

재미있는 건 영화 <워 호스>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등으로 알려진 리처드 커티스와 <빌리 엘리어트>로 각광받은 리 홀이 참가한 시나리오는 조이가 거쳐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흘러간다. 스필버그 감독은 “미니어처 같은 작은 스토리들이 한데 모여 더 큰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에피소드식 포맷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조이의 여정에서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캐릭터들이 어떻게 하나하나씩 자신을 조이에게 각인시키고, 또 조이가 어떻게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는 <조이>의 이야기가 “현대사회와 강한 연계가 있다”고 덧붙인다. “경기 불황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감이 팽배한 현재, 개개인이 이 위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문제”라고. 스필버그가 하필 이 시대에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이유는 뭘까. 제1차 세계대전은 자동 대포와 화학전에서 쓰이는 머스터드 가스, 기계화된 탱크 등이 처음으로 사용된 전쟁이다. 1차대전 이전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기사도 정신이나 명예를 중요시했다면, 1차대전은 전세계 역사상 현대화된 무기로 대량 살상을 초래한 첫 번째 전쟁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970만명의 군인과 670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게다가 1차대전은 그때까지 대표적으로 사용됐던 기병 출격 방식의 공격이 마지막으로 활용된 전쟁이기도 하다. 기병 출격은 기병대가 기마를 타고 그 기동력을 이용해 싸우는 방식이다. 극중에서도 조이가 자신의 새로운 주인 니콜스 대위와 함께 기병 출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워 호스>의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인 동시에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한 마리 말의 오디세이적인 생존기를 통해 추락하는 경제와 지역 분쟁과 테러리즘의 시대에 지친 관객을 위로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가 1982년 <E.T.>로 그랬듯이 말이다. 특히 스필버그는 1차대전 말기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의 참호에서 대치하던 중, 이념을 잠시나마 접어두고 철조망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을 살리려 애쓰는 장면을 삽입한다. 그러니까 이건 스필버그의 말대로 전쟁영화가 아니다. 사랑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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