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투시력의 일종인 사이코메트리는 어떤 인물이나 사물에 접촉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사물)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권호영 감독의 <미라클>(가제)은 살인사건에 뛰어든 형사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한 청년의 이야기다. 권호영 감독의 전작이 <평행이론>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가 초현실적인 소재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작 그는 소재의 파장이 큰 이야기를 연이어 다루게 된 걸 “의도치 않은 일”이라 했다. 영화사로부터 <미라클>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그는 소재보다 제목이 우선 자신의 마음을 붙잡았다고 했다.
권호영 감독은 당시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평행이론>을 끝낸 뒤 느낀 바가 있었다. 내가 자꾸 누굴 속이려 했구나, 겉멋을 부리려 했구나, 반성을 많이 했다. (웃음)” 그러한 성찰을 토대로 제작 중인 <미라클>은 담백한 스릴러영화가 될 것 같다. 이 말이 심심한 스릴러로 읽혀선 곤란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형사물 같지만 <미라클>에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슈피히어로(!)가 등장한다. 7살 여자아이의 살인사건을 맡은 형사 춘동(김강우)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의 현장을 묘사한 그래피티를 보게 되고 그 그래피티를 그린 준(김범)이 범인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준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춘동은 준의 협조를 받아 다시 범인 추적에 나선다. 버디무비의 형식을 빌려와 그 안에 스릴러 장치들을 녹여낸 <미라클>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는 아니다”. <평행이론>으로 ‘반전’에 크게 덴 적 있는 권호영 감독은 이번엔 “단순한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서스펜스를 어떻게 잘 살려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한다.
김강우, 김범 두 젊은 남자배우의 연기도 기대해봄 직하다. 애초 춘동은 40대 중반으로 설정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40대 남자배우치고 형사 역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송강호, 설경구, 황정민 같은 배우들이 형사 역을 너무도 훌륭히 연기해놓은 터라 배우들이 형사 연기 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더라.” 결국 춘동이란 인물은 40대에서 30대로 연령이 낮아졌고, 그 역은 김강우에게 돌아갔다. 권호영 감독은 김강우에게 처음부터 “형, 동생 하고 지내자”고 제안했다. 그는 배우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줬고, 배우가 스스로 캐릭터를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연기지도를 했다. 그리하여 “예의바르기도 하고 다혈질”이기도 한 김강우의 본성이 이번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날 거라 귀띔한다. 초능력자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상처받고, 스스로 외부와 단절한 채 살아가는 인물인 준은 김범이 연기한다. 어두운 캐릭터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던 김범은 일찌감치 <미라클>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꾸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 <미라클>은 6월에 모든 촬영을 마쳤다. 이 ‘기적’은 내년 상반기쯤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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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가제)은 판타지를 빌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영화이길 바란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주인공처럼, 이 영화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읽게 된다면 재미가 배가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