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내가 본 세상의 윤리학을 외치다
2012-09-0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박명랑 감독의 <분노의 윤리학> 출연 이제훈 곽도원 조진웅 김태훈 문소리

희, 노, 애, 락. 인간의 네 가지 대표 감정 중 어떤 감정이 가장 상위 감정일까. <분노의 윤리학>은 ‘노’를 으뜸으로 꼽는 영화다. 시나리오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기쁘거나 슬프거나 즐거운 상황에선 언제든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화가 나면 그 화가 풀리기 전까지 다른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 여대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살인범(김태훈), 스토커(이제훈), 포주(조진웅), 내연남(곽도원)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숨가쁘게 움직이는 이 영화는 이글거리는 분노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 연출부를 거쳐 <분노의 윤리학>으로 장편영화 입봉을 앞둔 박명랑 감독은, ‘명랑’한 이름과는 정반대의 세계를 그리고 싶어 한다.

-이 영화의 출발 지점이 궁금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말다툼하는 걸 봤다. 다음날 어머니에게 왜 싸웠냐고 물어봤는데, 들어보니 어머니 말씀이 맞구나 싶은 거다. 그런데 아버지랑 얘기해보면 또 그 말도 맞는 것 같고. 두분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다 말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화내고 싸우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런 상황에서 시작하지 않나 싶더라. 그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다섯 캐릭터가 모두 주인공이다. 어느 한 인물에 무게감을 싣지 않고 다양한 인물에 동등하게 비중을 부여한 것 같다.
=여러 캐릭터에 골고루 역할을 부여하는 건 우리 영화에 꼭 필요한 설정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결말은 이상하게 파국으로 치닫는 것. 이게 내가 본 세상의 윤리학이기 때문이다. 한두명의 캐릭터가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면 인물간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 거다.

-이제훈, 곽도원, 조진웅, 김태훈, 문소리를 캐스팅한 이유는.
=우선 남자 캐릭터부터 말하자면 사실 넷 다 용서할 수 없는 나쁜 사람들이다. 하지만 캐스팅을 할 땐 그 인물의 긍정적인 면과 어울릴 수 있을지를 주로 봤다. 현수(김태훈)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평소엔 평범하고 착한 사람이다. 정훈(이제훈)은 수줍음이 많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명록(조진웅)은 거칠고 폭력을 쓰지만 귀여운 면이 있다. 수택(곽도원)은 비겁하지만 부드러운 사람이고.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으면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문제는 선화(문소리)였는데, 남자 캐릭터의 경우 내 성격의 일면이 많이 반영되었다면 여자 캐릭터는 상상하며 만든 부분이 많아 배우의 해석이 중요했다. 문소리씨의 역할이 크다.

-이렇게 통화 장면이 많은 영화가 있었나 싶다.
=(웃음) 시나리오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인물들은 전화로 분노를 표출한다. 전화받는 장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얼굴 보지 않고 말을 전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소통이 불발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통화 신이라고 봤다.

-이들의 충돌을 어떤 방식의 영상으로 보여줄지 궁금하다. 핵심이 되는 이미지가 있나.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는 위에서 인물을 내려다보는 수직의 이미지다.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넘어갈 때, 높은 곳에서 카메라가 쑥 내려와 캐릭터를 쫓는 장치를 준비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관객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거다. 한 사람만 따라가지 말고 모든 인물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자는.

tip

한 남자가 버스에서 고등학생에게 심한 욕을 듣는다. 하지만 이 남자도 보통은 아니라서,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고등학생을 쫓는다. 어떤 사건으로부터 끝장을 보고 마는 인물을 다룬 박명랑 감독의 단편 <미안합니다>(2002)는 <분노의 윤리학>을 짐작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미안합니다>의 장편 버전이 아닌가 싶다. 스탭, 배우들에게 이 단편을 보여줬더니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지 이해가 간다고 하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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