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10여년 전, <살인의 추억>의 카피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한마디로 압축했다. 한국형 스릴러의 르네상스 시대라 할 만한 지금, 저 구호에 가장 자주 호출당하는 것은 ‘유괴영화’라는 기괴한 신생 장르다. <까> 연출부, <달마야 놀자> 조감독 출신인 정근섭 감독의 입봉작 <몽타주>도 그 무리에 속한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가 남다르다. 15년. 공소시효가 만료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이를 잃은 엄마 하경과 오청호 형사의 마음은 여전히 지옥이다. 그런 그들 앞에 범인이 과거의 사건현장에 놓고 간 국화꽃 한 송이가 발견된다. 15년간 꿈속에서 범인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살아온 두 사람에게 보상의 시간은 도래할까. <몽타주>의 시계는 그 요원한 결말을 향해 달린다.
-<몽타주>의 출발점은. 단편으로 찍으려던 것을 확장했다.
=용산역에서 벌어지는 추격 신이 있었는데 단편 예산으로는 감당이 안될 것 같더라. 거기에 따로 구상 중이던 두 시나리오의 영향도 있었다. 따돌림당하다 죽은 여자아이의 엄마 이야기와 살인범의 아들과 피해자의 엄마의 만남을 다룬 이야긴데, 그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도 들어왔다. 아이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로 나왔었고, 엄정화도 모성애 넘치는 엄마 역을 여러 번 했는데.
=김상경씨의 진정성을 좋아한다. 오청호 형사의 집념이나 슬픔을 잘 표현해줄 것 같았다. <살인의 추억> 때보다는 강인한 캐릭터일 거다. 엄정화씨는 그동안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이미지를 많이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하경은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면서 심지가 강한 인물이라 결이 다를 거다.
-유괴영화가 이제는 스릴러의 한 지류를 형성했는데 <몽타주>만의 무언가가 있다면.
=투자심사나 캐스팅을 할 때 최대 약점이 유괴영화라는 거였다.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해도 ‘유괴영화’라고 낙인찍더라. 하지만 이건 유괴범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다. 악몽 같던 날로부터 15년간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망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스릴러에 가깝다. 성공하는 스릴러와 실패하는 스릴러의 차이도 인물에 대한 집중도에 있다고 봤다. 인물을 따라가면 장르적인 긴장은 자연히 생기는 것 같다.
-가장 공들인 장면은.
=물론 용산역 추격 신이다. KTX 열차들이 들고 나는 7번 플랫폼에서 범인과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찍어야 하는 대규모 신이다. 거기다 낮 신이라 장소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제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콘티 작업도 아주 세밀하게 하고 있다. 스피디하고 화려한 액션보다 인물의 표정을 담아내는 데 집중할 거다.
-촬영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공간에 빽빽하게 차 있는 인물들의 간절한 마음을 화면에 녹여낼 방법을 찾고 있다. 15년 전 가장 무더웠던 여름날이 배경인데, 그날의 열기를 아이의 방 안에 다 밀어넣어 볼 수는 없을까, 사람들이 에어컨도 못 틀고 땀 찔찔 흘려가면서 전화 너머 범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담을 수는 없을까, 그런 게 고민이다.
-9월15일에 크랭크인해서 세달간 촬영한다고. 짧지 않은 스케줄이다.
=공간이 많아서 그렇다. 좀 줄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웃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
tip
명품 조연의 발굴은 계속된다. 시골 형사 오청호와 대척점을 이룰 서울지방경찰청 삼인방을 연기할 조희봉, 유승목, 정해균의 앙상블에 기대를 걸어봐도 좋다. “삼인방에 관한 건 세분이 다 알아서 해주시기로 했다”며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정근섭 감독은 “도시적 느낌을 벗은 김상경의 오청호만큼이나 삼인방도 새로운 형사 캐릭터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