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12세 관람가 공포스릴러
2012-09-04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용균 감독의 <이야기>(가제) 출연 이시영 엄기준

“원혼은 이야기를 타고 온다.” 영화의 카피로도 무방할 이 요약문은, 김용균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이자 두 번째 공포스릴러물이 될 <이야기>(가제)에 등장하는 웹툰 제목이다. <전설의 고향>을 연상케 하는 제목처럼, 이 음산하기 짝이 없는 웹툰은 구천을 떠도는 목소리들을 실어 나른다. <분홍신>에 분홍신이 있었다면 <이야기>에는 웹툰이 있는 셈이다. 분홍신이 시기에 빠진 여인들을 징벌하기를 멈추지 않았듯, 웹툰은 진실을 기만한 자들에 대한 재판을 계속한다. 피에 물든 과거를 묻어두려 했던 이들은 웹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되고, 그림이 현실로 둔갑하는 순간 어김없이 죗값을 지불해야 한다. “귀신이 무서운 건 나를 찌르는 게 있어서다. 영적인 존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거다. 웹툰에 나오는 서로 다른 네 사람에 관한 네개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그 점을 건드린다.” “착한 척하지 않는 시나리오에 끌렸다”는 감독의 말대로 <이야기>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가식을 들추어내고 가책을 들여다보는 데 가차없는 호러다.

착한 척하다가 시험에 들게 될 두 주인공, 웹툰 작가 강지영과 강력계 형사 이기철은 각각 이시영과 엄기준이 맡는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를 비롯해 코미디의 히로인 자리를 주로 꿰차온 이시영보다 복싱으로 ‘근성과 집념’을 보여준 이시영을 떠올린다면 강지영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기준의 이기철은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까도남’을 담당했던 손규호 PD와의 교집합이 넓은 편이다.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혼 들린 웹툰의 정체를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척추 역할을 한다. 다만 감독 이름만 보고 <와니와 준하>나 <불꽃처럼 나비처럼>같이 남녀 주인공의 아릿한 ‘케미’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그보다는 영화에 타 장르의 그래픽을 유연하게 녹여내온 그의 용접술이 제대로 빛을 발할 기회다.

비주얼에 관한 한 <이야기>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웹툰과 실사의 조화다. 웹툰의 매체적 속성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보다 훨씬 많은 공을 들였다. “툰은 스틸처럼 결정적 순간, 아주 극적인 순간을 위주로 한컷씩 그림을 그리는 거잖나. 그 컷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면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 중 하나가, 실제로 만화가들이 여러 레이어를 따로 그려서 한장으로 겹쳐내는 걸 반대로 다시 분리하는 거다. CG를 쓰면 그 레이어들 사이로 카메라가 파고들 수 있다.” 그 외에도 팝업이나 점멸 효과로 웹툰의 실사적 구현, 실사의 웹툰적 구현을 꾀했다. <와니와 준하>의 수채화풍 애니메이션,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게임 룩 CG를 기억한다면 이번에도 툰이 서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듯하다. 첫 촬영을 열흘 앞두고 막 완성된 콘티북을 넘겨보는 김용균 감독에게 이제 남은 일은 시나리오의 “탄탄한 구성과 스피디한 진행”을 화면에 옮겨내는 것. “첫 촬영은 악몽에 시달리는 강지영이 신경정신과에서 상담받는 장면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제대로 웹툰스러운 비웹툰 원작 영화의 탄생이 기다려진다.

tip

“12세 관람가가 목표다.” 몇년간 유행한 도살형 호러나 스릴러에 피로를 느꼈던 관객이라면 귀가 솔깃할 말이다. “설정은 충분히 세지만 노골적인 묘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김용균 감독. “묘사보다 무드로 압도하는” 공포스릴러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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