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고 생각하며
2012-12-04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죽음에 관하여> 시니, 혀노 작가

“넌 죽었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는데, 모르는 남자가 자신이 ‘신’이라며 이런 말을 건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네이버 목요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인생의 항해를 마치고 죽음의 문앞에 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의 인생이 같지 않듯,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울부짖고, 어떤 사람은 비로소 평화로워지고, 어떤 사람은 살아생전의 죗값을 치른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기억을 잃고 죽음의 문으로 걸어들어가기 전, 삶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이 ‘인생 정리’를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게 <죽음에 관하여>의 기본 설정이다. 그렇다면 사후세계를 다룬 수많은 만화들과 다를 게 뭐냐고? 몇화만 읽어봐도 알게 될 거다. 이 웹툰의 매력은 몇번이고 내용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마지막 컷의 강력한 일격에 있다는 점을. 예측 가능한 수순으로 흘러가는가 싶던 망자와 신의 대화는, 망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힘을 갖는다. 모든 사람의 죽음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어쩌면 너무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들릴 수 있는 주제를 미스터리 스타일의 이야기 구조에 녹여 식상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이 <죽음에 관하여>의 승부수다.

이 작품의 매력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소는 ‘신’ 캐릭터와 서정적인 배경음악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미스터리한 남자 ‘신’은 시니 작가의 냉철한 성격과 혀노 작가가 알고 지내는 지인의 ‘패션왕스러운’ 외모를 결합한 인물이라고. 다른 웹툰에서 찾아보기 힘든 배경음악은 베스트도전 시절 이 작품을 눈여겨보던 한 독자의 제안으로 함께 수록하게 됐다. squar라는 이름의 작곡가(무려 고등학생이란다!)가 매주 웹툰의 내용에 따라 새롭게 작곡하는 <죽음에 관하여>의 O.S.T는 스크롤을 내리는 독자의 감정을 한껏 고조시킨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얼마 전 O.S.T 음반도 발매했다.

소방서에서 군 복무를 했던 스토리작가 시니는 구급차 안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들로부터 <죽음에 관하여>의 이야기를 구상해냈다. “죽은 사람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낯설었다. 무섭고, 두렵고, 한편으론 끔찍하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런 분들을 많이 보게 되면서 ‘저 사람이 죽었구나’ 그냥 그렇게 넘겨버리게 되더라.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자연의 섭리처럼 느껴졌다.” 그가 직접 경험했던 수많은 죽음을 생각하다가 단숨에 써내려간 에피소드가 바로 <죽음에 관하여> 2화의 살인마 이야기다. 문제는 이 작품의 정제된 이야기와 자신의 그림체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코믹 스타일의 그림체를 구사하던 시니 작가는 고민 끝에 자신의 가장 친한 대학 동창 혀노 작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야, 너 그림 한번 그려볼래?” 당시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 코너에 <남과 여>를 연재하고 있던 혀노 작가는 짬짬이 친구 작품의 그림을 그리다가 공교롭게도 자신의 작품을 잠시 접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베스트 도전 웹툰’에서 <죽음에 관하여>의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그리던 작품을 짓밟고 올라서다니! 어쩐지 <죽음에 관하여>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자신감이 하락하고 있다. (웃음)” 농담으로 서로에게 눈치주는 절친한 사이이지만, 스토리작가와 그림작가로서 둘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주는 긍정적인 한쌍이다.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할 줄 아는 시니의 이야기가 시선을 잡아끈다면, 혀노의 그림은 시니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감성의 결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서로의 장점을 합쳤을 때 비로소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버리지 않고”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가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고. 초반 연재분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죽음에 관하여>를 앞으로 더더욱 오래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어보지만, 두 작가는 “소재나 이야기가 약해진다 싶으면 미련없이 끝낼” 정도의 결연한 자세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탐구해나가는 중이다. 그들이 앞으로 선사할 촌철살인의 일격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산책, 사람 구경…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최근 가장 주목하는 웹툰은.
=혀노_<덴마>와 <인간의 숲>. <덴마>는 보면 볼수록 정교한 세계관과 그걸 표현해내는 방식에 감탄한다. 엄청난 연륜이 느껴지는 만화다. <인간의 숲>은 그냥 보면 재밌다.
시니_난 <죽음에 관하여>. 내가 재밌으라고 그리는 웹툰이니까 내겐 제일 재밌게 느껴진다.

-작업 이외의 시간에는 뭘 하나.
=혀노_예전엔 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산책하고 사람 구경하는 게 재밌다.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시니_잠을 제일 많이 자는 것 같다. 많이 자면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마감의 조력자(물건, 사람 다 포함).
=혀노_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다. 특히 리쌍, 브라운아이드소울, 김경호. 이 세 뮤지션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듣는 타이밍은 모두 다르다. 마감 빨리 해야 할 때는 김경호의 노래를 듣고, 느긋하게 감정을 잡아야 할 때는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노래를 듣고.
시니_시끄럽고 산만한 환경이 필요하다. 조용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스타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