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하리마오픽쳐스 / 감독 이석훈 / 각본 천성일 / 촬영 김영호 / 의상 권유진 / VFX슈퍼바이저 강종익 / 출연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크랭크인 7월31일 / 개봉 2014년 여름
시놉시스 조선의 정통성을 입증할 수 있는 국새가 우연한 사고로 고래 뱃속에 들어간다. 궁지에 몰린 사대부들은 해적들이 국새를 훔쳐갔다고 조정에 거짓 보고를 올린다. 열흘 안에 국새를 찾지 못하면 토벌당할 위기에 처한 산적과 해적은 모두 고래를 찾아 바다로 떠난다.
“재밌네요. 그런데 이걸 한국에서 만들 수 있을까요?” 지지난해 겨울, 천성일 작가에게 <해적> 시나리오의 모니터를 부탁받은 이석훈 감독(<방과후 옥상> <댄싱퀸>)의 반응이다. 산적, 해적, 관군이 조선의 국새를 삼켜버린 고래를 쫓는다니, 이건 해양어드벤처물이 될 것이 틀림없는 영화였다. 제리 브룩하이머나 고어 버빈스키(<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제작진)라면 몰라도, 영화의 3분의 1 이상을 바다 장면으로 가득 채워야 할 이 작품을 한국 감독이 만든다는 건,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을 수 있다. 1년 반 뒤, 상황은 달라졌다. 디지털 캐릭터가 한국영화의 주연배우로 등판 대기 중이고, 1.5km에 달하는 세기말의 열차가 한국 극장가의 스크린을 가로지를 2013년, “안된다는 핑계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석훈 감독은 말한다. 그런 그는 지금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해적>의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형 해양어드벤처영화의 새 장을 목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적>의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과 프리 프로덕션을 병행하고 있는 이석훈 감독을 만났다.
-<해적> 같은 블록버스터영화는 처음 연출한다.
=<댄싱퀸> 이후,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다. 여러 편을 봤는데, 잘돼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작품을 선택하기가 참 힘들더라. 사실 <해적>이 잘될 거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기더라.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다. 이 작품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은 내가 이전에 연출했던 영화들과 비슷한 맥락이니 잘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그동안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스케일이 크고, 시각적인 특수효과(VFX)의 비중도 높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 그 부분에 대한 도전의식이 생기더라. 어차피 영화가 아무리 좋은 배우, 시나리오를 가졌어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거라면 차라리 모험을 해보자, 더 크고 의미있는 도전을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영화다.
-그동안 본격적으로 해적을 다룬 한국영화가 없었는데.
=영화도 없었을뿐더러 아예 한국에서 해적이 활동했던 역사적 기록부터가 드물더라. 그래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관객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할리우드영화의 제작진이라면 그들이 그동안 관습적으로 만들어왔던 해양어드벤처영화의 범주안에서 상상을 변주하겠지. 우리는 그 범주가 없다보니 아예 처음부터 모든 요소를 다 상상해야 하는 과정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준비하며 참고하거나 영감을 받은 자료들이 있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같은 영화를 참고했다. 왜냐하면 관객의 눈높이가 이들 영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 사극보다 할리우드영화의 컨벤션을 더 따르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배는 대개 돛이 네모나고 바닥이 평평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해적선을 그렇게 만들면 멋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서양배의 디자인을 차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관객의 선입견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때로는 잘 피하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산적과 해적이 조선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쫓는 것이 <해적>의 줄거리다. 더 구체적으로, 여기엔 어떤 사연이 있나.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여러 세력이 보물을 쫓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영화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선 보물을 쫓는다는 사실보다는 그 상황을 둘러싼 배경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조선의 국호와 국새가 명나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알고 있나? 조선 초기에는 20여년 동안 국새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건국 초기이다 보니 여러 문제가 있었다더라. 명나라가 조선의 정통성을 인정해주지 않아 그걸 바로잡으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해적>에서도 국새를 받아오는 건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 국새가 바다에 빠져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자, 신흥사대부들이 이성계에게 해적이 국새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며 해적과 산적을 토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해적과 산적이 국새를 찾기 위해 움직이게 되는 이야기다.
-해적과 산적이 맞붙는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이 두 유형의 도적은 어떻게 다르게 묘사되나.
=극중에서 해적이 그런 말을 한다. “너희들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봇짐이나 터는 애들이고, 우리는 큰 상단을 터는 대도적”이라고. 굳이 따지자면 스케일은 해적이 좀더 크다. 그들은 무정부주의자 같은 측면이 있고, 배 안이 자기들의 나라라고 할까. 고려나 조선의 백성이 아닌 자기들만의 공화국을 가진 그런 느낌이다. 산적은 어떻게 보면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웃음) 이성계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중앙으로 상납되는 공물을 가로채기도 하거든. 이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을 거다.
-주요 인물로는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나.
=산적 세력의 장사정과 해적 세력의 여월이 주요 인물이다. 장사정 역으로는 김남길을, 여월에는 손예진을 캐스팅했다.
-캐스팅된 주요 배우들에게 각각 어떤 점을 기대하나.
=<캐리비안의 해적>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사정 역에 굉장히 섹시한 해적을 상상하고 있더라. (웃음) 김남길씨는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염두에 뒀던 배우다. 또 장사정은 멋있을 땐 멋있고, 때로는 망가지기도 해야 하는 인물인데, 주변 매니저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이건 김남길, 그 자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남길씨가 굉장히 밝고 명랑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면에서 장사정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여월은 그동안 주로 남자배우들이 연기해왔던 느낌의 인물이다. 과묵하고, 카리스마있는. 그러나 마음속은 천생 여자다. 손예진씨가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해양 신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영화 전체가 2500컷이라고 하면 1천컷 이상은 갈 것 같다. 할리우드였다면 특수촬영용 배, 바다에 띄우는 배, 이렇게 두척을 다 만들었겠지만 우리는 예산을 고려해 바다에 대한 묘사는 VFX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대신 주요 배는 세척 정도 제작할 예정이다. 견적을 내보니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배 못지않게 큰 규모더라.
-VFX 기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도 기대된다.
=영화 속에 몇 가지 톤이 있는데, 크게는 두 가지가 포인트일 것 같다. 굉장히 진지한 액션 장면, 그리고 주성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코믹한 장면. 고래를 잡으러 나간 도적이 무지해서 상어를 잡으려 하는 장면은 주성치의 <쿵푸허슬> <소림축구>에 등장할 법한 과장된 액션을 보여줄 거다. 반면 배 세척이 동시에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리얼하면서도 스펙터클하게 연출할 예정이다.
한줄 감상 포인트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의 탄생일까. 바다로 갈 산적의 모습도 궁금하다.
바다를 몰라서 슬프고 웃긴, <해적>의 코미디
지금이야 검색창에 ‘고래’를 넣고 엔터키만 누르면 되는 세상이지만, 700여년 전 사람들이 고래가 어떤 존재인지 알 리가 있었겠는가. 이석훈 감독에 따르면 바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조선시대 사람들의 행동은 <해적>의 유머를 담당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거라고. 이석훈 감독은 제작사 하리마오 픽쳐스 사무실에서 “고래가 커봤자 황소만 하겠지 싶어 조그만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산적들”(60쪽 참조)의 컨셉아트를 공개했는데, 거대한 상어와 마주하며 죽창을 휘두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짠하다. 특히 유해진이 연기하는 해적 출신의 산적 철봉은 “바다에 대해 너무 모르는” 산적 가운데서 급격하게 서열이 올라가는 인물로, <해적>에서 “가장 코미디적인 재미를 주는” 존재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