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이다. 아름답다. 강하다. 단단하다. 한두 단어가 겹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단어를 한꺼번에 바칠 만한 사람은 드물다.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여왕 팸 그리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1949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군정비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덟살 때 미스 콜로라도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여감방>(1971), <빅 버드 케이지>(1972)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 <코피>(1973), <폭시 브라운>(1974)을 통해 주류영화계마저 무시할 수 없는 섹시 심벌로 자리잡는다. 70년대 할리우드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상업영화인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은 이를테면 폭력과 선정성으로 무장한 일종의 소모품에 가까웠다. 팸 그리어는 그런 자기 반복적인 대량상품 속에서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미를 발한다. 빤한 섹스와 폭력 이야기마저 그녀의 육체를 거치는 순간 저항정신의 산물로 확장되는 것이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인기는 10년을 채 가지 못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팸 그리어는 <폭시 브라운>의 오마주랄 수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1997)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가진 것 없는 흑인 여성이 제도권에 저항하는 유일한 수단인 폭력은 팸 그리어로 인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재키 브라운>은 흔히 팸 그리어의 부활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그녀는 <재키 브라운>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 다만 타란티노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몰랐을 따름이다. 20세기 가장 매력적인 여성 중 한명. 그럼에도 여전히 독신을 고수하는 도도하고 당당한 여인. 길들여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여전히, 아니 영원히 섹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