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연기는 삶과 다르지 않다”
2015-08-04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회고전 ‘훌륭한 배우 좋은 사람, 임달화’로 부천을 찾은 임달화

회고전 타이틀은 ‘훌륭한 배우 좋은 사람’이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고민에 빠졌다. 영화로 그를 접한 이들이라면 ‘훌륭한 배우’를 그의 앞에 놓는 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1980년에 데뷔한 이래 200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한 대배우 앞에서 더이상 연기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의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연기 영역을 넓혀간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을 넘어 ‘놀라운’ 배우다. 하지만 임달화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앞에 놓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아내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가정적인 남편이자 세상 둘도 없을 ‘딸바보’다. 자신을 낮추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이 겸손한 대배우는 힘들고 피곤한 촬영장에서도 유쾌한 미소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즐겁게 만드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와 한번이라도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 역시 그의 매력을 칭찬하기 바쁘다. 매체마다 사진이 겹치면 심심하지 않겠냐며 손수 챙겨온 옷을 일일이 갈아입는 스타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 회고전에 초청된 <PTU>(2003), <흑사회>(2005), <천공의 눈>(2007), <세월신투>(2010), <어둠 속의 이야기: 미리야>(2013), <충봉차>(2015)는 임달화가 직접 골랐다. “주로 경찰과 보스 역할로 나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다. 이번에 배우 임달화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기회를 준 BiFan에 감사한다.” 그 말처럼 6편의 영화는 임달화의 연기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를 충실히 훑고 있다. 그는 이미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중견배우였지만 2000년 이후 두기봉 영화에 출연하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했다. 시작은 1999년 <미션>이었지만 임달화가 회고전에 선택한 첫 번째 영화는 2003년작 <PTU>다. “마이크라는 캐릭터에 애착이 있다. 매분 매초 위협과 마주하는 경찰들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마이크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다”는 그의 말에서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임달화의 연기를 논하는 데 있어 동갑내기 친구인 두기봉을 빼놓을 순 없다. 그는 두기봉에 대해 “훌륭한 감독,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이번 회고전 제목에 빗대어 재치 있게 대답했다. “내게 중요한 감독 두 사람을 꼽는다면 두기봉과 <협도고비>(1993)의 임영동이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지만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운다. 만약 내가 연출을 한다면 그들처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찍을 것이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임달화의 첫 연출작도 만날 수 있다. <어둠 속의 이야기: 미리야> 중 <장물>을 연출한 임달화는 호러영화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녹여냈다. “이 영화를 찍게 된 건 홍콩의 비싼 땅값을 풍자하기 위해서다. 현재 홍콩은 서민들이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을 넘어 죽은 사람들이 머물 곳도 없을 지경이다. 어떤 장르를 하더라도, 설사 액션영화를 찍을 때도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다독일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그런 내용을 담은 액션영화다.”

어떤 장르로 표현되건 임달화의 연기 밑바탕에는 휴머니즘이 깔려 있다. 그것은 인간 임달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연기를 한다는 건 삶을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화면 속의 나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거기엔 연기가 없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 고통, 슬픔을 화면을 통해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 그게 내가 연기를 하는 목적이고 연기 그 자체이다.” 대배우의 연기론은 소박하고 정직해서 더 믿음이 간다. 광기 어린 행동을 할 때나 섬뜩한 보스 연기를 보여줄 때도 그 밑에 깔린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좀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활짝 핀 꽃중년의 각오는 앞으로의 임달화가 보여줄 새로운 스펙트럼을 기대하게 만든다.

‘훌륭한 배우 좋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런 칭찬과 긍정적인 반응들이야말로 내게 지속적으로 영화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며 더 칭찬해달라고 했다. 훌륭한 배우와 좋은 사람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는 우문에 그는 선뜻 현답을 내어놓았다. “꼭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훌륭한 배우를 택하겠다. 연기는 내 삶의 첫 번째 지향이자 생활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하지만 훌륭한 배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시 가정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게 힘을 주는 아내와 딸이 있기에 내가 안심하고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 경우엔 좋은 사람이라서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배우의 안정감은 주변을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출발했다. “<도둑들>에서 딥키스로 한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김해숙 배우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린다.” 오늘의 임달화를 만들어준 모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배우, 지나온 35년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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