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로운 역할에 대한 갈증으로 차 있다”는 송일국은 이서 감독의 <타투이스트>(2014)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한지순 역을 “딱 원해왔던 역할”이라고 표현했다. <타투이스트>는 살인마 한지순이 타투이스트 수나에게 문신을 받으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 삼둥이의 아버지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자리한 그에게 사이코패스 역할은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배역이었을 터다. 그러나 송일국은 “파격적인 역할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고 한다. 외려 그는 “사실 예능을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배우는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 모습을 너무 노출해버리면 몰입을 방해할 수 있지 않나. 예능을 한 게 어떤 면에선 관객에게 죄송하다. 이미지를 해칠까 하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관객의 관람을 방해할까 걱정”이라고.
관객을 향한 배려만큼 송일국은 역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고통을 즐기는 한지순을 이해하기 위해 판사인 아내에게 범죄자의 심리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잉크 없이 손등에 문신을 해보기도 했다. 아프긴 정말 아프더라. 이게 그 흔적”이라며 손등의 작은 상흔을 가리켰다. 배역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그는, 완벽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던 신을 다시 찍고 싶다는 아쉬움을 토로할 만큼의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첫 촬영할 때까진 다 이해가 안 돼서 한두 신 놓친 게 있다. 촬영이 진행되며 답을 찾아 한지순을 완전히 알게 됐는데, 그게 너무 아쉽더라. 사비를 들여서라도 그 신을 다시 찍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그에게 이 작품이 이토록 소중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배우 송일국이 아니라 어머니 누구, 할아버지 누구, 외증조할아버지 누구 하는 식으로 규정되어 살아왔다. 원래는 철없는 인간이지만 점점 철들면서 조상께 누가 되진 말자고 사는 거지. 그래서 내 안엔 늘 일탈을 꿈꾸는 에너지가 있다. 이번 작품에선 그걸 원 없이 끄집어냈다. 어떤 작품보다 빠져들어 연기하며 희열을 느꼈고, 행복했다.”
일탈의 기회는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원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드라마 위주로 하다 보니 기회가 많진 않았다. 기존에 맡아온 사극의 왕 같은 역할과 이미지 때문에 들어오는 역할도 한정돼 있었다. 그러던 중 인상 깊게 봤던 <가시꽃>(2012)의 이돈구 감독이 <현기증>(2014)의 배역을 제안했다. 그걸 인연으로 <타투이스트>와 <플라이하이>(2014)라는 독립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현기증>에서 작은 역할을 연기했었는데 이런 보답을 받은 거다.” 이번 출연을 ‘보답’이라고 표현한 송일국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멀리 보는 배우였다. “저예산 작품이다 보니 출연료보다 쓴 돈이 더 많다. 하지만 이서 감독을 비롯해 모두 앞날이 창창한 신인감독들이다. 전작들을 다 봤는데 장래가 기대되더라. 그런 면에서는 꽤 좋은 투자를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잘돼서 작은 배역이라도 주지 않을까. (웃음)” 자기 자신은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미래는 멀리 내다보는 송일국. 그는 기존의 이미지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