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칸국제영화제에서 도착한 두 번째 영화통신
2016-05-23
글 : 장영엽 (편집장)
취재지원 : 최현정 (파리 통신원)
장영엽, 김성훈, 김혜리 기자의 칸 리포트와 <아가씨> <부산행> 리뷰와 현지 반응 크리스틴 스튜어트•제시 아이젠버그 인터뷰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5월17일 화요일.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중반부를 넘어선 지금,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상영관에서 마주하는 기자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영화제 공식 협찬사로 기자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네스카페 부스는 카페인 섭취가 절실한 기자들로 늘 장사진을 이룬다. 아침 8시30분에 그날의 첫 영화를 보기 시작해 짬짬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오후 10시쯤 마지막 상영이 열렸던 극장을 빠져나오는 생활을 일주일간 반복하다보면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지치기 마련이다(그런 의미에서 거의 매 상영 때 극장에서 마주치는 나이 지긋한 해외 평론가들의 평온한 표정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다). 게다가 올해의 칸은 기자들에게 시련 한 가지를 안겨줬다. 경쟁부문 상영작의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이다.

긴 상영시간에 관한 논란

물론 상영시간이 긴 영화는 경쟁부문에 언제나 있어왔다. 지난 2013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179분짜리 영화였고, 2014년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윈터 슬립>(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의 상영시간은 196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올해처럼 상당수의 경쟁작이 긴 호흡을 가진 경우는 드물었다. 당장 경쟁부문의 포문을 연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 푸이우의 신작 <시에라네바다>의 러닝타임은 2시간53분이었다. 독일 여성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어드만>(2시간42분)과 영국 여성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2시간42분)가 그 뒤를 이었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시간25분)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브라질의 신성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아쿠아리우스>(2시간20분) 또한 경쟁부문 상영작의 러닝타임 평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시에라네바다>

단지 보는 이를 지치게 하는 긴 상영시간을 불평하기 위해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처럼 긴 호흡이 영화적으로 반드시 필요했는지 여부일 것이다. <LA 타임스>의 평론가 저스틴 창은 올해의 경쟁부문 상영작에 대해 ‘얼마나 길어야 너무 긴 것인가?’(How long is too long?)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좋은 영화치고 너무 긴 작품이 없으며 나쁜 영화치고 충분하게 짧은 영화가 없다”(No good movie is too long and no bad movie is short enough)라는 로저 에버트의 말을 인용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경쟁부문 11편의 영화를 보며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몇몇 경쟁작은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감독의 욕심을 덜어냈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 푸이우의 <시에라네바다>와 영국 여성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그런 작품들이다.

먼저 푸이우의 신작 <시에라네바다>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다. 집 밖으로 거의 벗어나지 않은 채 이 방 저 방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가족들의 대화와 갈등을 관망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워킹은 그곳에 없지만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아버지의 부유하는 영혼처럼 느껴진다. 가족사와 정치적, 사회적 이슈(지난 2015년 1월 발생한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도 언급된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대화가 자유롭게 오가는 한 루마니아 가정집을 통해 크리스티 푸이우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방식이 지나치게 장황하고 단조로워 영화의 러닝타임인 세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인내심을 잃게 된다. 영미권 언론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여성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는 푸이우의 영화에 비하면 훨씬 더 흥미롭고 많은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승합차 한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도시를 전전하며 잡지를 파는 미국 10대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내일이라곤 없는 양 뜨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사랑한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청춘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등장인물들의 육체성이다. 그녀는 몸의 움직임과 충돌을 통해 대사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화해의 말을 건네는 대신 함께 춤추며 서로를 이해했던 <피쉬 탱크>의 모녀처럼, <아메리칸 허니>의 등장인물들은 목적 없이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흔들며 발광하는 청춘의 자유분방함을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특히 안드레아 아놀드가 플로리다의 백사장에서 찾아냈다는 신인 여배우 사샤 레인과 할리우드의 악동 샤이아 러버프는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영화의 호흡이다. 새로운 도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소소한 사건들을 겪은 뒤 다시 버스에 올라타 다른 도시로 떠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아메리칸 허니>가 지닌 특유의 리듬감은 다소 헐거워진다.

<토니 어드만>

마렌 아데의 <토니 어드만> 호평

영화제가 중반부에 접어든 지금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듣는 말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최근 몇년간을 통틀어 올해만큼 선뜻 답하기 힘든 해는 없었다. 확신을 가지고 지지할 만큼 눈에 띄게 뛰어난 작품이 없을뿐더러 지난해 구스 반 산트의 <씨 오브 트리스>처럼 확연하게 아쉬운 작품도 없기 때문이다. 경쟁부문 상영작의 질적 평준화는 올해 영화제의 가장 핵심적인 트렌드다. 영화제 공식 데일리를 발행하고 있는 <스크린>과 <르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만 보아도 작품마다 그 평가가 첨예하게 나뉘는 것은 물론이고 기자, 평론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의 지지작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 역시 “매일마다 큰 상을 탈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들이 등장한다”며 수상작 예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장 <씨네21>이 신뢰하는 평자들로 구성된 올해의 경쟁부문 별점 지면(79쪽 참조)을 보더라도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도 가장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작품은 독일 여성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어드만>이다. <르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 지면에서는 무려 여섯개 매체가 그녀의 황금종려상을 점쳤고, <스크린> 또한 이 작품에 3.7점이라는 가장 높은 평점을 선사했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에 목마른 이들에게 마렌 아데와 <토니 어드만>의 존재감은 다양한 측면에서 신선하다. 그동안의 경쟁부문에 드물었던 코미디 장르의 영화이고, 8년 만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독일영화이며, 칸영화제의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누누이 지적되어왔던 여성감독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니 어드만>은 장단점이 너무도 분명한 영화다. 아마도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미 잘 알려진 거장의 익숙한 평작보다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신인감독의 채 완성되지 않은 독창적인 개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일에 치여 살아가는 딸(산드라 휠러)과 남다른 유머감각을 지닌 아버지(피터 시모니셰크)가 <토니 어드만>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딸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은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틀니를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딸의 업무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조명하는 2시간가량의 에피소드는 때때로 지루하고 작위적이다(딸의 중요한 미팅 자리마다 부득불 끼어들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망치고 마는 인물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가 영화 중반부까지의 평가를 좌우할 것 같다). 하지만 러닝타임을 30분 남겨둔 후반부에 이르러 이 영화는 웃음에 인색한 평론가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집단 누드 신과 털북숭이 캐릭터를 등장시켜 폭소와 눈물을 동시에 선사했다. 지난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전작 <에브리원 엘스>에서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려 하는 커플 사이의 관계망에 주목한 마렌 아데는 <토니 어드만>을 통해 코믹 장르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만약 그녀가 많은 이들이 예측하는 대로 올해의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황금종려상을 가져간다면, 마렌 아데는 <피아노>(1993)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온 이후 23년 만에 두 번째로 이 상을 수상하는 여성감독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프랑스 평단이 지지하는 브루노 뒤몽의 신작 <슬랙 베이> 역시 코미디영화다. 하지만 <토니 어드만>과 달리 이 영화가 선보이는 코미디는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프랑스 북부 어느 해변가 마을에서 사람들이 연달아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은 마을 곳곳을 수색하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마을 언덕 별장에 사는 귀족 가문의 라프(이 캐릭터의 불분명한 성별은 <슬랙 베이>의 가장 매혹적인 미스터리다)와 어부 집안의 첫째아들 마 루트가 사랑에 빠진다. 벌레스크(풍자) 코미디 장르인 동시에 전작 <릴 퀸퀸>(2014)처럼 미스터리 수사물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의 목적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정면으로 응시하려 하지 않는 인간 군상의 아이러니를 브루노 뒤몽은 과장된 방식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비전문배우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극단 출신 배우를 주로 캐스팅해왔던 브루노 뒤몽이 이번 영화에서 파브리스 루치니, 줄리엣 비노쉬,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등 유럽권 스타 배우들을 출연시켜 이들이 엉망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는 점도 전작과는 다른 변화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 작품으로 뒤몽은 심각함과 광기, 고전주의와 이야기의 우화적 접근, 환희와 멜로드라마를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호평한 반면, <버라이어티>는 “뒤몽은 아직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의 괴짜 영화의 정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최근 몇년간 칸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영화를 전작으로 둔 감독들의 귀환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호수의 이방인>으로 지난 2013년 뭇 경쟁부문 영화보다 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프랑스 감독 알랭 기로디와 정교한 내러티브가 인상적이었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의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그들이다. 아쉽게도 <스테잉 버티컬>을 보지 못했지만 동료 기자의 말에 따르면 이번 영화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 불가능한 수순으로 전개되는 알랭 기로디표 영화가 확실해 보인다. 차기작에 등장시킬 늑대를 찾아 남부 프랑스를 헤매던 영화감독이 주인공이다. 그는 늑대를 찾기는커녕 양치기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뒤, 어디론가 사라진 여자를 대신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다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날것을 좋아하는 감독의 취향이 이번 영화에서는 너무 쓸데없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신작 <퍼스널 쇼퍼>는 올해 영화제 중반까지 상영된 모든 경쟁부문 영화를 통틀어 가장 괴작에 가까운 작품이다. 허구와 현실의 관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성에 주목해왔던 아사야스는 이번 작품에서 그 관심사를 초자연적 호러라는 장르에 대입시킨다. 쌍둥이 형제 루이스를 잃은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어느 날 밤부터 그의 존재를 느낀다. 두려운 마음에 일을 핑계로 런던으로 도망쳐보기도 하지만 루이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갑작스러운 소리로, 집요한 문자로 모린의 신경을 긁어놓는다. <퍼스널 쇼퍼>를 통해 아사야스는 이성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존재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스릴감 있게 펼쳐 보인다. 이 영화는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 중 유일하게 영화가 끝난 뒤 기자들의 야유가 울려퍼졌던 작품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영화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아사야스의 이 불균질한 신작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만듦새와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지만, 오히려 그 수많은 허점들 때문에 자꾸만 곱씹어보게 되는 작품이다.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한 영미권 감독들의 신작 또한 경쟁부문 수상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의 켄 로치는 은퇴를 번복한 뒤 그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 다시금 영화를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직업을 잃은 목수 대니얼 블레이크가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다니지만, 믿을 수 없게 비효율적인 공무원들의 일처리 방식에 번번이 좌절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과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존재로 만드는 영국 관료주의의 불합리함에 날카로운 일침을 날리는 켄 로치의 영화는 새롭지는 않지만 간결하고 힘이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영화의 러닝타임과 작품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로저 에버트의 명언에 딱 들어맞는 좋은 예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인종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제프 니콜스의 영화 <러빙>은 다소 실망스럽다. 스릴러와 재난영화, 어드벤처물 등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며 마침내 법정 드라마에 다다른 그이지만, 장르적인 장치를 배제한 채 오직 인물과 서사를 통해 기능하는 드라마를 만들기에는 아직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조엘 에저턴의 새로운 면모와 루스 네가라는 매력적인 신인의 발견은 내년 오스카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패터슨>

짐 자무시는 여전히 강렬하다

예년과 비교해 힘이 좀 빠지는 영미권 영화의 프론트 러너는 <패터슨>을 들고 칸을 찾은 짐 자무시다. 패터슨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정적이고, 짐 자무시의 영화답게 스타일리시하며, 귀여운 위트로 가득하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패터슨, 버스 ‘드라이버’를 연기하는 애덤 드라이버(비록 짐 자무시는 이러한 설정이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앞으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발음이 같은,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까지 <패터슨>에서 중요한 건 마치 라임을 맞춘 시처럼 반복 변주되는 삶의 단면들이다. 일견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리듬감을 아름답게 포착해낸 짐 자무시의 신작 <패터슨>은 올해 경쟁부문을 찾은 영미권 영화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더불어 극장을 나서는 모두가 한마디씩 덧붙일 수밖에 없었던, 패터슨이 키우던 불도그, ‘마빈’은 연기 잘하는 개에게 수여되는 ‘팜 도그’상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는 후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칸영화제의 분위기를 주도한 건 놀랍게도 거장의 신작이 아니라 재능 있는 신인의 세 번째 장편영화였다. 하지만 승부를 장담하기에는 이르다. 스페인의 작가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야심차게 귀환한 폴 버호벤, 칸에서 한번도 빈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는 자비에 돌란과 관록의 다르덴 형제, 마렌 아데와 더불어 가장 주목해야 할 신인으로 손꼽히는 브라질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등의 신작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중 가장 흥미진진한 영화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축포를 쏘아올리기엔 아직 시간이 이르다. 졸린 눈을 비비고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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