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다음 가족영화는 60대에 찍겠다” - <바다보다 더 깊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6-05-23
글 : 김혜리
사진 : 백종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와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연달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바다보다 더 깊은>(가제)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처음 소개했다. <걸어도 걸어도>에 이어,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따온 제목인 <바다보다 더 깊은>은 부덕한 아버지, 부재하는 아버지라는 모티브를 감독의 근작과 공유한다. 소싯적 문학상을 탄 후 작가를 꿈꾸던 료타(아베 히로시)는 생활에 무심하고 도박벽을 씻지 못해 이혼에 이르렀고 흥신소 일로 생계를 버틴다.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데 실패했지만 료타에겐 미련이 남아 있다. 료타의 노모 요시코(기키 기린)도 아들의 재결합을 바란다. 그리고 요시코의 집에 료타와 전처 교코(마키 요코), 손자 싱고(요시자와 다이요)가 모인 저녁, 그해 여름 스물세 번째 태풍이 이들의 발을 하룻밤 동안 묶는다. 세상을 날리고 씻어내는 비바람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삶에서 무엇을 성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려놓는 이야기다. 5월17일 칸에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전한다.

-<바다보다 더 깊은>에는 삶과 행복에 대한 경구가 많이 나온다. 감독 본인의 어머니에게 들은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견해인가.

=배우 기키 기린의 말도 들어 있고, 출처는 여럿이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현재를 사랑하는 법을 한번도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지”라고 했던 이야기도 영화 대사로 나온다.

-당신의 영화가 그리는 가족에게는 사라진 구성원, 죽은 식구가 있다. 본인의 경험과 유관한가.

=그렇다. 하지만 상실은 가족의 조건 중 하나다. 나도 아버지를 보냈고 이어서 어머니도 여읨으로써 결국 누구의 자식도 아니게 됐다. 동시에 스스로 아버지가 됐고 나의 아내는 어머니가 됐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가족의 형성과정이다. 완전하다면 채울 필요가 없어진다.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가족이 이어진다.

-어린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이 작품마다 다른가.

=<아무도 모른다>(2004) 이후 10년간 아이들과 일하는 내 방법은 똑같다. 전체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주지 않고 캐릭터끼리의 관계만 이해하도록 만든다. 프로덕션 전에는 식사와 놀이를 같이하며 어린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촬영에 들어가면 글이 아니라 말로 대사를 알려주면서 연기를 이끈다.

-극중에서 필체, 서예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아버지의 유물 중 벼루가 매우 가치 높은 물건으로 감정받는 일화도 무시할 수 없다. 쓴다는 행위로 뭘 표현하고 싶었나.

=내 아버지는 글씨가 훌륭했고 나도 뭐 나쁘지 않다. (미소) 그러니까 글씨 잘 쓰는 재주는 아버지로부터 내게 전해진 몇 가지 중 하나다. 필체를 포함해 이 영화의 벼루, 야구 글러브, 탯줄 같은 사물은 모두 물려받는 행위를 표현한다.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뭔가가 상속된다.

-료타의 누나는 동생에게 가족의 추억을 소설에 썼다고 나무란다. 혹시 당신이 평소 받는 비난인가.

=“가족의 추억은 너만의 재산이 아니야. 우리 모두 거라고”라고 누나가 나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긴 대사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누나에게 보여줄 수 없다. (웃음)

-료타의 아들 싱고는 안타보다 사구(볼넷)를 선호한다. 소년의 어떤 성격을 대변하는 선택인가.

=나도 어릴 적에 야구를 했다. 늘 사구만 기다리는 1번 타자였다. 안타 치려고 무리하지 않는 싱고의 태도는 현재를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할머니의 말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일본어로 다루오시루(足るお知る)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충분함을 알고 능력을 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철학을 료타는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싱고는 이어받은 것이다.

-영화 보면서 배가 고팠다. 주제와 관련해 음식이 당신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홈드라마에서는 음식 자체보다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장면이 중요하다. 식구들은 설거지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손도 쓰고 말도 하고 뭔가 영화로 표현하기 좋은 액션이다. <걸어도 걸어도>(2008)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도 중심에는 죽은 아버지의 존재감이 있다. 또 내러티브도 죽음을 향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삶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써 죽음과 반대방향의 힘이 되어 영화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생각한다.

-<걸어도 걸어도> 이후 TV드라마 <고잉 마이 홈>을 포함해 가족 드라마에 정착한 인상이다. 이번 영화로 한 시기를 매듭짓게 되나, 아니면 가족을 더 연구할 예정인가.

=다음 몇 작품은 가족 이야기에서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60대에 접어들어 할아버지가 된 다음에는 다시 가족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다. 다음에는 좀더 저널리스틱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준비하는 작품 중 하나는 살인사건을 포함하기에 법정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전후 일본을 그리는 좀 규모가 큰 영화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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