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멀찍이 떨어진 작품이다. 시대극이고, 전작에 비해 대사가 무척 많고, 두 여성주인공을 서사의 전면에 내세운 것도 처음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전작과의 유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한 얘기는 절대 아니다. 성에 갇힌 소녀가 탈출을 감행하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스토커>(2012)와 함께 묶일 만하다.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인물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복수는 나의 것>(2002)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올드보이>(2003)나 단편 <컷>(2004)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지만, 이 영화에선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어쨌거나 분명한 건 <아가씨>가 박찬욱 감독의 전작 중에서 인물들의 목표가 가장 간단명료하면서도 식민지 조선의 혼란스러운 근대화 풍경, 범죄 장르, 여성주인공, 로맨스, 변태성, 폭력 등 다양한 레이어가 존재해 무척 매력적인 영화라는 사실이다.
‘일본과 조선은 한몸’이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 아래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려고 했던 1930년대 조선과 일본이 <아가씨>의 무대다. 보영당이라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유명한 여성 장물아비 복순의 손에 자란 숙희(김태리). 일찍이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분할 줄 알고, 자물쇠 따는 법과 소매치기 기술을 두루 익힌” 그녀는 복순을 도와 “낳자마자 버려지는 핏덩이를 일본에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어느 날,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히데코는 이모부이자 후견인인 코우즈키(조진웅)의 엄격한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 히데코를 속여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 조력자 숙희와 나누겠다는 게 백작의 야심찬 계획이다. 숙희는 히데코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고, 어미 없이 유모(김해숙)의 손에 자란 까닭에 외로운 히데코는 숙희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아가씨>는 총 3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백작이 숙희를 히데코에게 보내 히데코를 속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숙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반대로 2부는 히데코의 시점으로 1부를 재구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히데코의 어린 시절과 코우즈키의 젊은 시절이 플래시백을 통해 드러난다. 마지막 3장은 1장과 2장을 거쳐 달려온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2부가 끝날 때까지 히데코와 숙희 그리고 두 여성을 둘러싼 백작과 코우즈키가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마치 케이퍼무비를 보는 것 같은 쾌감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긴장감이 차곡차곡 구축된다(영화의 초반부, 백작이 보영당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범죄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케이퍼무비 속 범죄 설계자다). 이때 히데코, 숙희, 코우즈키 모든 인물의 한가운데 있는 백작의 역할이 중요한데, 하정우의 능청스러움이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인물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다.
두 여성의 관계성에 주목한 원작 <핑거스미스>와 달리 <아가씨>는 국가가 개인보다 우선하고,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에 걸쳐 있어 혼란스러운 식민지 시대를 히데코, 숙희, 백작, 코우즈키 등 네명의 지렛대 뒤에 배치시킨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이 와이드앵글인 애너모픽 렌즈(좌우 화각이 넓은 2.35:1 화면비율로 영상을 담아낸다.-편집자)를 선택한 것도 개인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식민지 시대상까지 한데 담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이야기에서 비중이 큰 코우즈키 저택은 단적으로 서양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뒤섞였다는 점에서 식민지 조선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가씨>는 금기의 시대에서 섹슈얼리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꽤 통쾌하다. 그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혹은 성장)을 찾기 위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알을 깨뜨리고 나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밖에도 정정훈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조상경 의상감독, 송종희 분장감독, 김상범 편집감독, 정서경 각본, 제작자 임승용으로 구성된 ‘팀 박찬욱’의 노련함이 <아가씨>의 세계를 완벽하게 직조해냈다.
<아가씨> 첫 상영은 지난 5월14일 오전 8시3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있었음에도 3천석 규모의 뤼미에르 대극장이 만석이 될 만큼 상영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높은 기대와 달리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지의 평점은 낮게 나왔다(<스크린>에서 평점 2.2점을, <르 필름 프랑세즈>에서 평점 3.25점을 기록했다). 평점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사가 한국어와 일본어가 혼재돼 사용되고,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까닭에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등 기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다. 하지만 선택은 조지 밀러가 이끄는 심사위원단 9인의 몫이다. 금기된 섹슈얼리티를 끝까지 밀어붙인 박찬욱 감독의 고집이 레이스 마지막 날에 웃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아가씨> 현지 매체 반응
<아가씨>가 첫 공개되자마자 영화를 지지하는 평부터 그렇지 않은 평까지 다양하게 쏟아졌다. 대체로 북미 매체가 호평을 보낸 반면, 프랑스 매체는 썩 좋게 보진 않았다. 공평하게 북미 매체와 프랑스 매체 반응을 각각 두개씩 소개한다.
<에크랑 라르주>_“사드와 오시마 나기사 사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뒤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너무 클래식하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줄거리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박찬욱은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2시간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만들어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뻔히 아는데 감독은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하니 관객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그의 경력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레 제코>_“박찬욱은 우리를 애무와 밀담 사이에 존재하는 거짓말의 미로로 초대한다. <아가씨>는 독이 든 향을 내뿜으며 우리를 그 향에 취하게 만든다.”
<버라이어티>_“류성희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코우즈키 저택은 영국과 일본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영국식의 화려함과 일본식의 우아함을 결합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저택은 이야기의 어두운 타락에 대한 힌트를 암시한다.”
<할리우드 리포터>_“1부와 2부 그리고 3부로 이어지는 동안 서사를 이끌어가는 시점이 계속 변화해 관객에게 혼란감을 주는 동시에 장르 특유의 쾌감을 선사한다. 2시간30분이 결코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