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인식의 확장 - <에듀케이션> 김승일
2016-07-04
글 : 이예지
사진 : 백종헌

2009년 <현대문학> 등단 2012년 시집 <에듀케이션> 2015년 <1월의 책>, <6월의 책>

‘신(新) 에밀’의 탄생. 김행숙 시인은 문학 에세이집 <에로스와 아우라>에서 그를 이렇게 호명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그의 첫 시집을 두고 ‘독고다이 소년의 순전한 날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기고백’이라고도 했다.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12년 첫 시집 <에듀케이션>을 펴낸 김승일 시인은 비성년 화자의 시선으로 학교와 교육, 집과 단절된 부모세대, 동세대 비성년들의 세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몰랐어요, 우리가 멀어질 줄을.(…) 선생님이 제 졸업에 동의하셨죠? 선생님은 자주 겪은 일이죠?”(<에듀케이션>) 그의 첫 시집에는 영영 졸업하지 않은 비성년의 목소리들이 담겨 있다.

무구한 소년 같은 얼굴의 김승일 시인은 자신의 시에 담긴 소년성의 발원지를 “부정”이라고 말한다.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보기엔 아닌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 그에게 학교는 “딴생각을 하기 좋은 곳”이었다. “강의를 듣는 중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하지만 그에게 부정이 반항이나 파괴의 의미는 아니다. “우상이나 부모세대를 없애고 싶다는 뜻에서의 부정이 아니라, ‘아니’에서 시작해 상상하고, 질문하고, 뒤틀고, 다양한 룰을 접목시켜보는 부정이다.” 그의 세계에서 부모는 비판이나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죽은 지 세 달이 흐른 뒤’(<방관>) 부재하는 단절의 상태로 기술된다. “실제로 학교 가는 걸 좋아해 개근상도 받은 착실한 학생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시인의 말 위로, ‘그렇지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양아치들보다 학교에 가는 양아치가 더 멋있다는 사실을’이라는 <부담>의 한 구절이 겹쳐진다.

구조주의적 시 쓰기에 매진하는 김승일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 방식을 “메타적 시 쓰기”라고 말한다. “매체를 가지고 노는 시 쓰기다. 이제까지는 시가 정동이나 서정을 표상화하거나 룰을 창안하려고 했다면, 내 또래의 황인찬, 송승언 같은 시인들은 룰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재조립하고 있다.” ‘이름을 불길해하는 사람들… 나를 나라고만 소개하고, 너를 너라고만 부르는 사람들’(<대명사 캠프>), ‘나는 시멘트를 가능성이라고 불렀다.… 이봐, 가능성 기분이 어떤가? 가능성엔 기분이 없었다’(<화장실이 붙인 별명>) 등의 구절처럼 그는 고유명사를 대명사로 치환하거나, 사물에 새로운 기표를 붙이며 의미를 확장해나간다. 그는 시를 “인식을 확장시키는 과정 자체”라고 한다. “다른 매체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시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싶다. 시는 사고의 전환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 적은 분량으로도 소설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시점을 변화시키며 겹겹이 구성할 수도 있다.”

그가 시 쓰기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단정 짓거나 정의하는 것”이다. “답을 내려주는 건 교양서가 할 일이지 예술이 할 일이 아니다.” 대신 그는 시를 쓰고, 살아가는 것을 ‘게임’에 비유한다. “게임은 여러 룰에 의해 전개된다. 살아가는 것도 모든 룰을 적용해보고, 새로운 룰도 접목해보는 것 아니겠나. 삶처럼 시도 그렇다.” 내년 초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될 다음 시집에서 그는 구조적으로 진화한 시를 보여주려 한다. “항상 저번 시와는 형식적으로 다른 걸 쓰려고 한다. 최근 쓰는 시들은 한 시에 서사가 대여섯개쯤 함축돼 있다.” 그의 방식은 어쩌면 이 구절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명감은 갖지 않을래. 사명감이 없는 애는 나밖에 없을 테니까.…짱깨가 내 앞을 지나갔다. 폭주족처럼. 이목을 끌며 멋있게.’(<멋진 사람>)

미드가 좋아서

미드 마니아인 그가 추천하는 작품은 <커뮤니티> <인트리트먼트> <어드벤쳐타임>. “<커뮤니티>는 매화 실험을 감행하는 메타적 드라마다. 자신들이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이고, 내시보다 낫다. (웃음) <인트리트먼트>는 정신분석 상담을 하는 시간을 거의 한 테이크로 찍는 연극적인 드라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보는 건 <어드벤쳐타임>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는 것 같은 획기적인 작품이다.”

김승일이 말하는 <인식의 확장>

도스또예프스키가 쓰려다가 죽느라고 쓰지 못한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2부를 쓰기 위해 나는 도스또예프스끼다 나는 도스또예프스끼다 계속 중얼거리고 자고 일어나서 팔이 차갑구나 내 아들 알료샤가 간질 발작으로 죽었구나…헌신적인 세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 리예브나 도스또옙스까야는 요양 중이던 도스또예프스끼가 구술하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속기로 받아썼다 나는 도스또다를 계속 중얼거렸던 나도 나의 아내에게 2부의 속기를 부탁했고… 그리하여 나는 쓴다 나의 아내가 모든 것을 속기하고 있다는 걸 숙지하고서 나는 쓴다 안나와 도스또의 도스또에게 나라면//이렇게 썼을 거라고

“<6월의 책>에 실은 시다. 결혼한 후 쓴 시로,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전 아내가 대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속기해준 것에 대해 썼다. 내 시 중에 가장 메타적인 시다. 도스토옙스키가 실제 이 소설을 쓸 때 아들 알료샤가 죽어 슬퍼하던 중, 수도사의 위로를 받고 기쁨이 들어간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더라. 나도 아내와 함께 시를 쓰면서 이 시 속에 어떻게 기쁨을 넣을지 고민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는 거다. 구조는 작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거라는걸 알았다. 결혼하니 시가 달라졌구나 했다.(웃음)”

베드베드북스

김승일 시인이 편집자인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만든 독립출판사다. 원래는 가상현실 세계관 게임과 SNS을 합친 창작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일단은 출판사부터 차렸다. 첫 시집을 내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시인은 시를 계간지에 발표하기보단 자유롭게 쓴 일기, 시, 산문을 엮어낸 책을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엔 <1월의 책> <6월의 책>을 출간해 판매했으며, 향후엔 <결투의 에티켓> 등 외국 서적을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 망원동에 위치한 베드베드북스는 소설가 한유주의 독립출판사 율리포프레스, 송승언 시인, 가수 이랑 등과 함께 작업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