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실존하는 기쁨 - <희지의 세계> 황인찬
2016-07-04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2010년 <현대문학> 등단 2012년 시집 <구관조 씻기기> 2015년 시집 <희지의 세계>

황인찬이 첫 시집을 내놓고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젊은 친구가!”였다고 한다. 스물세살에 등단해 스물다섯살에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선보인 그는 쉬운 언어로 쉽지 않은 세계를 그렸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했다. 인식의 ‘너머’를 보는 시선은 섬뜩했고, 그 섬뜩함은 공포와 아름다움을 함께 안겨주었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의 세계, 그것은 예감의 세계이자 직관의 세계다.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지”(<유독>) 그의 방법론과 인식론은 “아니, 어떻게 이렇게 젊은 친구가”라는 감탄을 불러냈지만 그를 향한 주목에 ‘젊어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별 의미 없어 보인다.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황인찬은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야’라는 정의에 대한 반동의 결과물 같았다. <구관조 씻기기>에서 대상과 철저히 거리두기를 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시인은 <희지의 세계>에 이르러 대상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첫 시집이 나온 시점에 현 정권이 탄생했다. (웃음) ‘잠깐 멈추고 바라보기’가 이 시대에 유용한 방법이 아니구나라는 게 첫 시집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고 반성이었다. 첫 시집의 시들이 왠지 무력해 보였다.” ‘무용한 아름다움의 기적’이 지금의 시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 그럼에도 황인찬의 관계 맺기 시도에는 어쩔 수 없는 머뭇거림과 냉소의 태도가 배어 있다.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실존하는 기쁨>),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종로사가>)라는 구절들이 말해주듯 몸과 몸이 맞닿아도 마음과 마음은 쉽게 닿지 않는다. 그것은 황인찬이 바라보는 지금의 세계가 ‘불가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불가능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니까. 그게 이 시대를 20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이다.” 황인찬의 시가 젊게 느껴진다면 그가 끊임없이 시대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3월부터는 들어오는 시 청탁을 거절하는 중이다. 대학에 10년간 적을 두고 학사-석사-박사 과정까지 이어가고 있는 그는 “시 쓰기, 공부하기, 시 쓰기, 공부하기의 생활이 반복되니 자극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엔 군대도 가야 한다. 그가 “세 번째 시집은 2020년대에 어울리는 시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2020년이라니. 아직은 그 말이 아득한 미지의 세계 같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딘가에 당도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이상하다”(<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고 시인은 말 했는데, 그때에도 황인찬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 곳에 당도해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샤이니 종현의 첫 정규 앨범 쇼케이스 현장. 황인찬 시인의 직찍.

아이돌 세계

황인찬은 아이돌 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긴다. “워낙 자극적인데, 그 자극이 좋다.” 특히 SM 아이돌을 좋아하며, 컨셉 없는 아이돌, 유행에 맞춰 나오는 아이돌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엔 설리 탈퇴 이후 열린 f(x) 콘서트에 갔다가 “울컥”했다고. “한국이 인권도 뭣도 없는 나라라서 아이돌 산업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윤리적인 시스템이지만, 아이돌이 한국적인 현상이라서 계속 지켜보게 되는 것 같다.”

황인찬이 말하는 <건축>

(…)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트려야 할까?” /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

황인찬 시인이 대학생 때 본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과 ‘지구 멸망이 가까워져서 벌이 사라져간다’는 뉴스가 이 시를 탄생케 한 첫출발이다. “영화도 좋았고 ‘벌집의 정령’이란 말도 멋있어서 학부생 때부터 계속 시를 써봐야겠다고 고민했다. 육각형의 방, 윙윙거리는 소리들, 따가운 느낌, 따가운 햇살, 여름의 이미지들이 따라왔고, 실제로 작은 벌집을 떨어뜨려 여왕벌이 분노의 비행을 하는 것을 본 경험 등이 섞여서 만들어진 시다.”

<헤프닝>

영화 생각

“영화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데 극장은 안좋아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싫고 답답하다. 이미 광고 시작할 때부터 화가 난다. (웃음)” 그럼에도 좋아하는 감독은 M. 나이트 샤말란. “모두가 욕하는 <해프닝>(2008)도 재밌게 봤다. ‘엄청 대단한 게 있어’ 하며 스펙터클을 쌓아가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끝내버리는 그 태도가 이상하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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