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거리의 싸움꾼 -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서효인
2016-07-04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2006년 <시인세계> 등단 2010년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2011년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더 안 좋아지겠지.” 그래서 서효인은 열심히 산다. 두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야구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와 다운증후군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담은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을 펴낸 이후 야구와 육아에 관한 글도 활발히 써왔다. 현재는 출판사 편집인으로 일하며 문학잡지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한 생활인의 느낌이 강해 보인다는 말에 “불안하고 조바심 나고 공포스러워서, 그 마음을 추동해서 열심히 산다”고 답한 시인은 시집의 판매 부수보다 산문집의 판매 부수가 더 많다는 사실에 딱히 섭섭해하지 않는다. “뭐든 사랑받으면 좋지 않냐”는 태도. 서효인은 불안과 조바심과 공포를 대량생산, 대량주입하는 폭력의 세계를 향해 시로써 불만과 분노를 터뜨려왔다. 그러니 시와 산문 어디쯤에 서효인이란 사람이 위치해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산문의 나는 한 꺼풀만 벗기면 보이는 나이고, 시는 겹겹이 쌓여 있는 나다. 내 안의 암흑의 핵심을 건드려 시를 쓴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에서 그는 폭력을 체험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와 거리, 폭력이 대물림되는 공간으로서의 사회 구석구석을 드러냈다. “닥치고 맞았다 숨거나 피할 수도 없는 거다 햇빛이 강한 거다 밝고 리얼한 거리에서 Street Fighter들은 이상하게 연전연패, 이니셜을 남길 동전만 한 공란도 없는 거다”. <거리의 싸움꾼-분노 조절법 초급반>에서 묘사한 푸른 장풍을 피하는 법만 알았던 오락실의 파이터들은 거리로 나온 순간 힘을 잃어버린다. “태클처럼 날카로운”, “실패의 표정”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FC 게토의 이삼류 골키퍼>)과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몰라 웃고” 있는 사람들(<마스크 3>)은 두 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에 이르러 “들끓는 마음을 가진 괴물”(<마그마>)들의 세계에서 ‘총력전’을 펼치게 된다. 서효인의 시는 정교하게 계급화된 사회를 응축된 에너지와 예리한 시선, 빈틈없는 문장과 리드미컬한 호흡으로 묘파한다. 딱딱한 듯 유연하고 껄렁한 듯 진지한 태도는 서효인의 시를 풍성하게 만든다.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에 실린 시들은 2011년 서효인에게 ‘김수영 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올 하반기엔 세 번째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첫 시집이 지방 소도시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계획으로 쓴 시들이라면, 두 번째 시집은 자본주의의 질서가 공고히 파고든 전 지구적 상황에 시선을 돌려 쓴 시들이었다. 세 번째 시집에는 도시 연작시들이 70~80% 차지할 거라고. “수평적 공간뿐 아니라 공간의 위아래를 꿰뚫는 수직의 시간, 공간이 품고 있는 분위기와 공기를 예민하게 캐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인터뷰 장소였던 ‘압구정’에 대한 시가 세 번째 시집에 들어 있다며 압구정의 역사를 단숨에 설명하던 그에게 이 세상은 끊임없이 시적이다. 그는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자서(自序)에 이렇게 썼다. “우리에게 복된 훈장은 말(言)이 아니라 세계고, 그것에 대한 모방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창조다.” 그러면서 “마주칠 당신의 손을 기다”린다고 했다. 서효인의 시를 읽는다는 건 그가 내민 손을 마주친다는 뜻이다. 우리의 악수가, 박수가 이 세계를 진동시키길 바란다는 뜻이다.

<사랑해, 파리>

그의 인생의 영화

서효인 시인의 ‘내 인생의 영화’는 구스 반 산트, 코언 형제 등이 참여한 18편의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2006)다. “아내와 연애할 때 봤는데, 그래서 좋았다. 신혼여행은 파리로 가자 했건만 정작 제주도를 갔다. 짧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식을 좋아하고 그게 내가 글을 쓰는 태도와도 닿아 있는 듯하다.” 참고로 첫 시집에 실린 시 <고래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에서 “지구가 철거될 것을 미리 아는 돌고래들에서 첫 모티브를 얻어” 쓴 시다.

서효인이 말하는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평화는 전투적으로 지속되었다. 노르망디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인천에 닿기까지, 당신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검독수리가 보이면 아무 파티션에나 기어들어 둥글게 몸을 말았다. 포탄이 떨어지는 반동에 당신은 순한 사람이었다. 늘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고, 의무병은 가장 멀리에 있었다.(…) 노래책을 뒤지며 모든 일을 망각하는 당신은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불침번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는 당신은 사람이다. 명령을 기다리며 전쟁의 뒤를 두려워하는 당신은 사람이었다. 백 년이 지나 당신의 평화는 인간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굉장히 재밌게 썼다. 시가 막 떠올라서 한번에 굉장히 빠르게 완성한 시다. 4시간 만에 쓴 것 같다. 낭독하기에도 재밌는 시다. 나름의 리듬으로 많이 읽어봤는데, 동료 시인들도 (낭독이) 개성 있다고 좋아하더라.” 애정이 가는 시를 꼽아달라고 하자 서효인은 단번에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을 꼽았다. 낭독에 대한 언급을 했다시피,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재밌는 시다.

아빠 그리고 야구

서효인에겐 두딸이 있다. 스물한 번째 염색체가 보통 사람들보다 하나 더 많은 다운증후군 첫째딸 은재의 이야기는 <잘 왔어 우리 딸>이란 책으로 나왔다. “주위에선 육아전문가, 좋은 아빠의 전형인양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도 가끔 애 보라고 하면 그냥 보고만 있다. 야구를 좋아하니까, 애 볼 때 야구 틀어놓곤 애 안 보고 야구 보고. (웃음)” 육아와 관련해 이 땅의 수많은 아빠들에게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좋은 아빠가 아니다. 그것만 알고 있어도 어느 정도 좋은 아빠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남자들은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목욕탕에서 거울 보면서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듯이.” 아직 어린 두딸을 돌보느라 최근엔 사회인 야구에서 뛰지 못하고 있다. 그의 포지션은 포수. “실력은 없었고, 포수는 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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