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맨몸과 마주하는 의상감독으로서 곽정애 의상실장의 최대 강점은 친화력과 세심함이다. 동료 의상실장들은 그런 면에서 곽정애 실장이 “박찬욱 감독이 가장 편히 여기는 의상실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연 곽정애 실장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쓰리, 몬스터>의 의상팀을 거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의 의상팀장까지 두루 맡았다. 지금은 김홍선 감독의 신작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김홍선 감독과도 <공모자들> <기술자들>에 이어 세 번째로 합을 맞추는 작품이다. 연이은 협업의 비결을 물으니 그저 “감독님들이 새로 누굴 알아가는 게 귀찮으신 것 아닐까”라며 미소만 지어 보일 따름이다. 조상경 의상감독과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때부터 시작해 가장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조상경) 언니도 나도 취향이 모던한 편인데 예쁘다고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언니는 특히 남들이 안 해본 걸 하려는 사람이라 지르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종종 브레이크를 건다. 그래선지 항상 나보고 건조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센’ 사람들과 잘 맞나보다.”
공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곽정애 실장의 섬세한 균형감각과 친화력은 영화라는 매체와 훨씬 잘 어울렸다. “영화의상은 생기와 활기가 있는 일이잖나. 제품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같은 일은 내가 하기엔 너무 건조했다. 영화미술을 하는 후배와 영화세트를 하는 친구로부터 의상 일을 소개받아 시작하게 됐는데 하다보니 적성에 맞았다. 공업디자인은 기밀 유출을 주의해야 하는 개인적인 일인 반면 영화의상은 감독이며 스탭이며 배우며 다들 오가며 한마디씩 보태게 되잖나.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해주는 일이었다. 회의 자리나 현장에서 툭탁거리면서 다 같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좋더라.”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피드백 받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그의 유연한 성격도 조상경 스튜디오 시스템과 오랜 협업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라 이런 ‘따로 또 같이’ 스타일이 지속될 수 있는 것 같다. 언니와 같이 작업할 경우 어떤 결정을 놓고 내가 독단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기댈 데가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언니는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설득을 하고 의견을 내면 된다.” 동료 손나리 의상실장은 곽정애 실장을 두고 “일도 잘하지만 특히 배우들의 성격적 특징을 잘 파악하는 꼼꼼함이 있다. 배우들과 금세 친해지는 비결이지 않을까”라고 한 바 있다. 곽정애 실장이 협업의 적임자임을 잘 말해준다. “필생의 의상? 그런 건 없다. 기쁘게 만들고, 배우들이 기쁘게 입고, 편히 연기하고, 감독님이 좋아하고, 화면에 잘 표현이 되면 그게 내가 가장 원한 의상일 것이다.”
<인간중독>
<인간중독>의 가흔(임지연)이 유달리 빛난 이유는 “1950년대의 허리 잘록하고 펑퍼짐한 옷을 입은 다른 여자들과는 눈에 띄게 달랐기 때문”이다. 가흔의 의상은 당대의 시점에선 실험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을, “모던하고 미래적인 1970년대식 룩”이었다. “내가 옷을 미리 정해둔다고 해도 배우를 만나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배우의 체형과 캐릭터를 고려해 깔끔하게 떨어지는 옷을 입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덧붙인다. “영화의상은 감독과 배우와 의상감독이 함께 만드는 옷이라 생각한다”는 그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바로 고증과 파격 사이에서 영화의 안과 밖을 아우르는 절묘한 균형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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