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캐릭터로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된 배우는 전도연이었다. 전도연은 <밀양>의 신애, <해피엔드>의 보라, <무뢰한>의 혜경, <너는 내 운명>의 은하, <접속>의 수현, <피도 눈물도 없이>의 수진 등 모두 6편의 작품으로 언급됐다. 운명의 사슬에 갇힌 여성, 질곡의 운명 속으로 뛰어드는 여성, 강한 자의식을 지닌 여성,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 현대인의 초상으로서의 여성 등 캐릭터의 온도와 성질을 가리지 않고 전도연이기에 가능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전도연은 “2000년대 한국영화의 얼굴”(이지현 평론가)이 되기에 충분했다. 전도연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배우는 배두나, 강수연, 윤여정이었다. 배두나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 <플란다스의 개>의 현남, <복수는 나의 것>의 영미, <도희야>의 영남, <괴물>의 남주로 모두 5편에 이름을 올렸다. 평범함과 엉뚱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즐겼던 배두나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리스트다. <경마장 가는 길>의 J, <씨받이>의 옥녀,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호정,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순녀, <블랙잭>의 은영까지, 1980, 90년대 한국영화의 당돌하고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를 도맡은 강수연 역시 빠질 리 없다. 윤여정의 경우 비슷한 캐릭터의 변주로 여러 번 이름이 언급됐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 <충녀> 그리고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작 <하녀>가 두루 거론됐으며, 그외에 <에미>와 <죽여주는 여자>의 윤여정 캐릭터를 기억하는 이도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 <암살> <베를린> <도둑들>의 전지현, <바람난 가족> <오아시스> <하하하> <가족의 탄생>의 문소리도 고른 지지를 받았다. 이처럼 최고의 여성 캐릭터를 꼽는 설문은 곧 당대 최고의 여성배우를 확인하는 지표가 되었다.
가장 많은 작품이 거론된 감독은 홍상수와 박찬욱의 2파전 양상이 전개됐다. 홍상수 감독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옥희의 영화> <오! 수정>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변의 여인> <극장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하하하> <생활의 발견>까지 9편이 언급됐는데, 소수의 표가 여러 영화에 분산된 게 특징이다. 변성찬 평론가는 <해변의 여인>의 문숙(고현정)을 최고의 여성 캐릭터 중 한명으로 꼽으면서 “언젠가부터 홍상수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가부장적 시선을 반사하고 교란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언급했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복수는 나의 것>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삼인조>에서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재밌는 건 박찬욱 감독이 직접 연출한 작품 외에 <비밀은 없다> <무뢰한> <미쓰 홍당무>처럼 그가 각본이나 제작, 기획에 참여한 작품들이 순위권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박찬욱과 홍상수라는 서로 다른 영화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두 감독의 여성 캐릭터가 나란히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