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친절한 금자씨> 감독 박찬욱, 2005 금자 이영애
한국영화에서 여성이 행하는 복수극은 수도 없이 봐왔다. 그 전형은 이른바 ‘팜므파탈’. 복수의 대상을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파괴해버릴 기세의 치명적이고 위험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째서 여자들은 악녀가 돼야 했을까. 이에 반기라고 들고 싶었던 것일까.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는 육감과 고혹이라는 빤한 이미지를 비켜서서 전에 없던 유형의 여성 캐릭터로 복수의 서막을 열어 젖혔다. “복수를 행하는 금자의 방식은 단순히 원수를 갚는 수준을 넘어선다. ‘무조건 예뻐야 한다’며 예술적으로 복수에 접근한다. 여자의 복수가 남자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걸 금자가 기어코 설득해낸”(허남웅 평론가) 것이다. 그리하여 “금자의 불친절한 복수극은 그 어떤 누아르보다도 서늘”(원신연 감독)하게 다가온다. 생각해보라. 고요히 읊조리는 듯하지만 상대를 꿰뚫어버리는 통렬함이 묻어나는 금자의 말투를. 13년간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금자가 속죄의 새하얀 두부 따위는 집어치우라며 아주 친절히도 말하지 않던가. “너나 잘하세요.” 그렇다. 금자는 알아서 척척 복수를 향한 제 갈 길을 나아간다. 그 태도에는 비릿한 웃음과 우아함이 어려 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를 잇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대단원은 금자를 통해 완성된다.
“예뻐야 돼. 무조건 예쁜 게 좋아.” 금자의 이 말이 곧 영화의 양식이기도 하다. 금자는, 금자가 행하는 복수의 여정은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성을 뛰어넘는 레트로 물방울 원피스, 단호한 전사로 보이기까지 한 검은 가죽 롱코트, 거기에 “친절해 보일까봐” 일부러 진하게 칠한 붉은 아이섀도까지. 금자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의 이영애의 발견, 나아가 발명”(최진성 감독)에 가까운 성취에서 비롯됐다. “대장금에서 금자로의 이영애의 화려한 변신”(박홍열 촬영감독)이다. 그 결과로 이영애는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시체스국제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물론 박찬욱 감독에게도 금자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박찬욱 감독, 정서경 작가 콤비가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여성 캐릭터”(임필성 감독) 금자를 시작으로 감독의 영화 세계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아가씨>(2016)로 뻗어나간다. 자의든 타의든 감금 상태에 놓여 있던 여성 캐릭터들이 닫힌 문을 박차고 나가는 방식으로의 확장이다.
그렇게 복수극은 구원과 사랑의 서사와 다시금 이어진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를 막 수행하려는 단계에서 금자는 복수극의 구경꾼이 되는 거다. 그제야 금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했을 법한 걸 남이 하는 걸 지켜볼 때 이 모든 것이 다 그릇됐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씨네21> 513호 인터뷰)고 말한 바 있다. 금자의 복수는 냉혈한의 그것이 아니다. “따뜻한 결말이기를 바랐다”는 감독의 바람대로 금자는 박찬욱 세계가 확인한 새로운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