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시즌2 Stranger Things2
감독 더퍼 형제, 숀 레비, 앤드루 스탠턴, 레베카 토머스 / 출연 밀리 보비 브라운, 위노나 라이더, 핀 울프하트, 케일럽 매클로플린, 게이튼 마타라조 / 국내 방영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가 공개되기 직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드라마가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렌지 이즈 블랙>과 같은 성공을 넷플릭스에 안겨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7월 시즌 첫 공개 이후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낳았고, 기획과 연출을 맡은 더퍼 형제가 바로 시즌2 각본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던 데는 눈썰미 좋은 제작자 숀 레비 감독의 공이 크다. 대여섯편의 단편영화와 이제 막 첫 장편 데뷔작으로 만든 호러영화 <히든>이 포트폴리오의 전부였던 맷 더퍼, 로스 더퍼 형제는 TV시리즈로 제작 가능한 파일럿 몇편의 각본을 들고 영화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히든>을 흥미롭게 본 프로듀서이자 숀 레비 감독의 제작사 ‘21랩스’의 대표인 도널드 디라인과도 만났는데 그에게서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숀 레비 감독은 <기묘한 이야기>를 읽자마자 그길로 더퍼 형제를 찾아가 드라마 판권을 계약했다. 더퍼 형제가 쓴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운 이유도 있었겠지만 마침 시나리오를 받아 읽던 2015년 즈음은 숀 레비 감독 스스로도 뭔가 변화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궁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건강도 나빠지고 스스로에게 자극이 필요하다고 여기던 때에 마침 <기묘한 이야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은 거의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그는 이 시리즈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더퍼 형제가 전체 에피소드 10개 가운데 일부의 각본만 완성된 채로 1, 2편 촬영을 마쳤을 때 그가 나서서 “내가 3, 4편을 연출할 테니 자네들은 그 시간에 각본을 완성하라”며 공동 연출자로도 이름을 올려버렸다. 여기까지가 자존감이 곤두박질치던 어느 할리우드의 중년 감독에게 일어난 기묘한 성공담이다. 제작자로서의 감각과 감독으로서의 야심이 <기묘한 이야기> 성공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더퍼 형제는 넷플릭스와 시즌2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자신들은 기획과 각본을 총괄하면서 1, 2편 연출로 기조를 잡아주고 3, 4편을 숀 레비 감독에게, 5, 6편을 앤드루 스탠턴 감독에게, 7편을 레베카 토머스 감독에게 맡기면서 각본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더퍼 형제는 시즌1 때 팬들이 보인 반응과 평을 면밀히 살피면서 각본을 계속 수정해나갔다. 물론 최종 마무리인 8, 9편은 더퍼 형제의 손에서 끝을 맺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인디애나주 호킨스라는 도시에 위치한 정체 모를 과학 연구 시설에서 실험에 의해 개조당해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소녀 일레븐(밀리 보비 브라운)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게 되면서 벌어지는 SF 호러 장르의 이야기다. 더퍼 형제는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즐겨봤던 1980년대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요소를 교과서 삼아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산업 내에서는 제작되기 어려운 연출을 자유롭게 시도했다. 연구시설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 일레븐을 보호하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 뭉친 동네 너드 소년 네명이 벌이는 화끈한 모험담의 플롯은 당대 스필버그 사단 영화나 스티븐 킹 소설 속 세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 역시 1980년대에 유행했던 여러 요소로 꾸몄다. 기획 단계 때 여러 영화사를 돌며 아동용 타깃의 소박한 재미 요소라며 지적받았던 것들을 모두 살려 성공을 거둔 것이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기획이다. 하지만 TV시리즈 제작에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숀 레비 감독의 감각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이런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TV드라마를 연출한 <알렉스 맥의 비밀세계>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하굣길에 우연히 화학물질에 닿아 텔레파시 능력이 생긴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SF 판타지 드라마였다. 그다음 연출에 참여한 드라마 <앨런 스트레인지의 여행>은 지구에 떨어져 흑인 소년의 모습으로 숨어 사는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 아동 드라마였다. <기묘한 이야기>의 배경 출처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기묘한 이야기> 이후 숀 레비 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였다. 그가 연출을 맡을 차기작은 존 카펜터 감독의 <스타맨>의 리메이크 영화화 작업,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영화화하는 <언차티드>, 이혼한 부부가 외계인 침공을 겪으며 아이들을 잃어버려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SF 액션영화 <더 폴> 등이다. <기묘한 이야기> 이후 숀 레비 감독이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나 스스로를 더 행복한 제작자로 만들어준다고 확신한다. 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또 그 결과물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연출과 제작은 너무 다른 영역이지만 둘 다 내가 즐기는 일이다.” 더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가 슈퍼히어로로 뒤덮인 할리우드에 지친 관객에게 신선한 활력이 되어줬다면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숀 레비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줬다.
밀리 보비 브라운
2017년 전세계 핼러윈 시즌 최고의 코스튬은 단연 ‘일레븐’이었다. 하얗게 삭발한 머리를 하고 흙먼지가 묻어 지저분해진 드레스를 입고는 한손에 와플을 들고 코피를 흘리는 일레븐은 더없이 순수하면서도 세계를 뒤엎을 무자비한 파워도 갖춘 초능력자. <기묘한 이야기> 시즌1이 연구실에서만 갇혀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와 친구들을 통해 우정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일레븐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면서 스스로 우정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슬픈 성장담을 다뤘다면 시즌2의 이야기는 그녀를 아끼고 또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일레븐이 살아갈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에 맞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시즌2에서는 이전 시리즈에서 화제가 됐던 일레븐의 의상 스타일이 ‘MTV 시절’의 복고풍으로 확 바뀐 놀라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 히어로 캐릭터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 이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밀리 보비 브라운이라는 놀라운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4년 스페인 출생으로 4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2013년에 데뷔해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 역에 발탁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지녔지만 연기로 이를 극복 중이다. 전세계 장르영화 팬들은 그녀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유일한 배우라며 열광하는데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다. 그녀가 없었다면 <기묘한 이야기>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