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헌터> Mindhunter
감독 데이비드 핀처, 앤드루 더글러스, 아시프 카파디아 외 / 출연 조너선 그로프, 홀트 매캘러니, 애나 토브 / 국내 방영 넷플릭스
옛날 옛적,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태우던 때의 일이었다. FBI가 구강성교를 범죄자들의 변태적인 성행위로 교육하던 시절의 일. <나를 찾아줘>(2014),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 <조디악>(2007)과 <세븐>(1995)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프로파일링’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넷플릭스의 <마인드헌터> 시리즈를 만들었다. 넷플릭스와 이미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성공시킨 핀처는 1970년대 후반의 홀든 포드(조너선 그로프)라는 인물을 따라간다. 시즌1이 모두 방영된 이 작품에서 핀처는 에피소드1, 2, 9, 10을 맡았으며 <에이미>의 아시프 카파디아, <아미티빌 호러>의 앤드루 더글러스 그리고 토비아스 린드홀름이 각각 2편씩의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시즌2도 제작 중이다.
FBI에서 요원 교육을 담당하는 홀든 포드는 여자친구가 전공하는 사회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금까지 홀든이 익혀왔고 검증해온 방식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살인자들을 위한 새로운 인식 체계가 필요한 건 아닐까. 홀든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과 함께 전국의 경찰서들을 돌며 범죄 관련 교육을 하는 빌 텐치(홀트 매캘러니)를 설득해, 홀든은 교도소로 향한다. 여러 사람을 죽인 살인범을 인터뷰해 무엇이 그들을 자극하는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들어보는 것이다. 21세기의 거의 모든 범죄물이 숨쉬듯 사용하는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 도구의 밑바탕이 겨우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참이다. 아무도 요청한 적 없는, 연쇄살인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연쇄살인자(serial killer)라는 말도 그제야 생겨났다. 물리적인 증거를 분석하는 심리적인 체계가.
<마인드헌터>는 존 더글러스의 동명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데이비드 핀처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상심리로 인한 연쇄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프로파일링이 처음 생기던 순간을 파고든다는 데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디악> <세븐> 같은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스릴러 드라마는 당연하게도 연쇄살인자의 전시장이 되며, 특히 홀든과 빌 팀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전설적인 연쇄살인자로 나오는 에드먼드 켐퍼(카메론 브리튼)의 오싹한 존재감은 이 드라마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는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 <마인드헌터>가 사이코패스에 대한 드라마가 아닌 사이코패스를 ‘사냥하는’(hunt)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위한 드라마가 아니라.” 핀처는 <마인드헌터>에서 수사관들쪽은 이름만 원작과 다른 게 아니라 인물 설정도 상당 부분 자유롭게 새로 했지만 연쇄살인자와의 인터뷰 장면들은 실제 기록을 충실히 되살려 찍었다고 말한다.
<마인드헌터>의 서스펜스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인 범죄수사물에서는 잡히지 않은 범인이 있고, 그가 연쇄적으로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가 있고, 그를 쫓는 수사관이 있다. 그리고 범죄자가 노리는 다음 희생자가 등장한다. 관객은 희생자가 구출될 수 있을지, 수사관이 범죄자를 너무 늦기 전에 체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손에 땀을 쥔다. <마인드헌터>에도 진행 중인 범죄들이 등장한다. 홀든은 현장수사관은 물론 심지어 FBI에서도 별 신뢰하지 않던 시절에 연쇄살인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프로파일링을 기반으로 (셜록 홈스 같다는 표현이 드라마에 등장한다) 전과자만을 용의자 취급하던 기존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 범인 검거를 연쇄적으로 성공시킨다. 그런데 그쪽이이 <마인드헌터>의 특징은 아니다. <마인드헌터>의 가장 숨막히는 대목들은 ‘이미 체포되어 수감 중인’ 살인자들을 면담하는 대목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철창 안의 존재가 어떻게 현역 FBI 수사관들을, 그리고 화면 너머의 시청자를 위협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를 본 사람이면 충분히 이해하리라. <마인드헌터>에서 그 역할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바로 에드먼드 켐퍼를 연기한 카메론 브리튼인 것.
홀든을 연기한 조너선 그로프는 뮤지컬 드라마 <글리>에 출연했고, <소셜 네트워크> 때 오디션을 본 게 인연이 되어 <마인드헌터>에 출연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핀처가 그에게 한 말은 “그만 웃어!”였다고. 부드럽고 선한, 종종 설치지 않아야 할 때도 설치는 경향의 홀든을 압박하는 에드먼드는, 신체가 구속되어 있어도 인간의 악함이 어떻게 주변을 질식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몸집, 내용을 모르면 상냥하게까지 들리는 느릿한 말투. 그가 웃으면서, 혹은 만족한 티를 내면서 자신의 범죄를 말하기 시작할 때 드러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자기애다. 의욕만 앞선 이런 팀의 중심을 잡는 것은 팀에 합류하는 심리학자 웬디 카(애나 토브)다. 연쇄살인자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말을 이끌어낼지, 그들의 말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말하지 않는 부분을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등이 그녀의 합류로 체계화된다. 웬디의 실제 모델이 된 앤 버제스 박사는 강간피해자들과의 상담을 통한 연구로 FBI에 기여했다.
<마인드헌터>는 살해현장의 디테일을 전시하는 대신 살인자의 내면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핀처는 묻는다. “우리는 인간성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인가? 비인간성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인가?” 범죄 수사물이 포르노가 아니기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은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책 <마인드헌터>
드라마 <마인드헌터>는 동명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저자 중 존 더글러스는 <양들의 침묵>의 잭 크로퍼드와 <크리미널 마인드> 시리즈의 제이슨 기디언의 모델. “살인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라”는 것, 즉 사냥꾼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라는 잠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가 1980년대 초 살인범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 경험을 회고하며 쓴 것이다. 그전까지는, 범죄는 면식범에 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수사대상에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은 그렇게 해결이 불가능했다. “살인 건수가 늘어감에 따라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여 살인행각이 점점 노련해진다.” 연쇄살인범뿐 아니라 연쇄강간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10명의 여자를 죽인 살인범은 정신병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