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가 맺어준 인연③] 데이비드 콘블럼, "한국에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달라"
2018-05-16
글 : 김정현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월트디즈니컴퍼니 부사장 시네마 클래스 지상중계

월트디즈니컴퍼니의 부사장 데이비드 콘블럼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빅 게스트’였다. 디즈니에서 아시아-태평양, 러시아 지역의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는 콘블럼은 디즈니의 임원인 동시에 자사의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팬이기도 하다. 5월 4일 CGV전주고사에서 데이비드 콘블럼과 함께하는 시네마 클래스가 열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덤보>(1941)의 상영 뒤, 콘블럼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성취와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를 재구성해 소개한다.

<덤보> 제작에 이르기까지 디즈니의 여정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릴까 한다. 디즈니는 형제였던 월트와 로이가 1923년에 창립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력으로 구현하겠다는 꿈을 가졌고 그것이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들은 시나리오와 대사를 통하지 않고 순전히 이미지만으로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소리와 컬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은 애니메이션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을 연계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디즈니는 안정된 재정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이 한단계 진화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라 여겨졌고,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하더라도 단편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최초로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1937년에 태어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그해에 가장 성공한 장편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디즈니의 비전은 점점 커졌고 제작에 들어가는 예산도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세계대전과 맞물리면서 디즈니는 연달아 커다란 흥행 실패를 경험하고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때 등장한 것이 <덤보>다. 디즈니는 적은 예산에서도 창작력을 발휘했고 <덤보>는 흥행에 성공해 앞의 실패들을 만회했다.

월트 디즈니는 스토리텔링의 천재였다. 그는 아주 작은 힌트나 내용을 가지고 만든 이야기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디즈니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보편성을 얻어냈다. 특히 그는 ‘언더독’(약자)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디즈니는 ‘언더독’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공하는 이야기를 자주 다뤘고 이런 이야기는 전세계 어디에서든지 보편적인 감성을 전달했다. 디즈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과 동화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전세계는 이전과 달리 접근하기 쉬워졌고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많아졌다. 덕분에 <뮬란>(1998)이나 <모아나>(2016) 같은 영화도 등장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달라. 하지만 디즈니는 제작 기간이 4~5년 정도 걸리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음악에 의해 만들어지는 감정적 효과도 항상 중요하게 여겼다. <덤보>를 예로 들어보자. <덤보>의 주제곡을 듣고 나중에 그 노래가 <덤보>에 나왔다는 사실은 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노래가 전달한 메시지와 감정은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게 될 거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제작만큼이나 음악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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