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상속녀>(2017)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은곰상인 알프레드 바우어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화를 연출한 마르셀로 마르티네시 감독은 파라과이의 공영방송국 제1프로듀서로 일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일을 그만둔 뒤 “파라과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부족함 없이 자랐던 여인 첼라(아나 브룬스)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삶의 변화를 통해, 영화는 한 노년의 여성이 세상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첫 장편영화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알프레드 바우어상 등을 수상했다.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기 전에 단편영화를 몇편 작업한 적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계로 복귀한 것인데 좋은 성과를 거둬 기분이 좋다. 파라과이는 정부 기금도 없고 영화학교도 없어 자체 제작은 불가능했다. 어렵게 여러 국가와 공동 제작 형태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첼라는 몰락한 상류층 계급이면서 레즈비언으로 묘사된다. 경제적 위기를 겪는 등 억압적인 상황에 처하는데 이런 연기를 선보일 배우 캐스팅이 어려웠을 것 같다.
=첼라 역의 아나 브룬스는 20여년 전에 연극배우를 하다 은퇴해서 변호사로 일하는 분이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됐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식과 손주까지 둔 사람이 레즈비언 연기를 한다는 것은 분명 도전이었을 것이다. 찍는 도중 여러 번 힘들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변호사 일을 못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본인도 만족해하는 것 같다.
-국가의 억압이나 몰락, 감옥 같은 삶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여성’이다.
=내가 사는 파라과이에서 여성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파라과이는 여성들이 열심히 일해 건설해낸 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는 파라과이 사회를 담고 싶기도 했다. 사실 첼라의 처지는 파라과이 전체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면도 있다. 독재정권하에서는 안전하게 살다가 독재자가 없어졌을 때 오히려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첼라가 집을 벗어나 만나게 되는 공간, 이를테면 여성 구치소라든가, 상류층 여인들이 모이는 살롱 같은 공간의 대비가 낯설고 흥미로웠다.
=첼라의 입장에서 보게 될 공간은 중요했다. 평생 가정에서만 지내온 여성이기 때문에 집은 그 자체로 감옥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처음 가는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감옥이라는 설정이 지닌 모순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진짜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유분방한 것을 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상속녀> 이후 차기작 계획이 있나.
=세계 영화제를 돌아다니느라 지금은 정신이 없다. (웃음) <상속녀>를 통해 파라과이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