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가 맺어준 인연⑦] 구혜선 감독 - 사랑의 파괴력을 담은 영화다
2018-05-16
글 : 김현수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미스터리 핑크>

구혜선은 쉬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연기와 연출을, 책과 그림을 동시다발적으로 쓰고 그리고 찍는다. 그녀가 연출한 최신작 <미스터리 핑크>(2018)는 기획 회의 하루, 촬영도 하루, 후반작업도 하루, 총 3일에 걸쳐 완성한 단편영화다. “제작비가 없어서 3일을 넘길 수 없었다”고 하지만 첫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2008) 이후 지난 10 년동안 꾸준히 메가폰을 잡은 결과,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스탭을 얻었고 그들과 쌓은 신뢰 덕분에 진행 가능했던 스케줄이기도 하다. “나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인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마음이 아프다. 시간 여유가 많기도 하고. (웃음)” 끊임없이 무언가를 구상해내던 그녀가 잦은 스케줄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다고 느껴질 때 병원에 누워 시나리오를 구상했다는 <미스터리 핑크>는 열린 결말을 넘어 관객이 자유롭게 이야기와 주제를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극중 주인공이 처한 상황, 대사,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가족애, 죽음, 사랑, 애증 같은 관념들이 여자, 립스틱, 하이힐, 분홍색 문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상징화된다. 시나리오를 읽은 배우들이 하나같이 “어렵다”고 느끼자, 그녀는 “연애할 때의 구속감이나 애증 등 사랑의 파괴력을 담은 영화”라고 설명하며 배우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기를 원했다. “배우로 연기할 때 도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연출하는 현장에서만큼은 그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케치만 하고 색칠은 배우들이 하도록 그들에게 맡겼다.”

사실 <미스터리 핑크>는 구혜선 감독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무게 혹은 페미니즘에 관한 고민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무엇도 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성별, 직업, 인격 등 답이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내가 생각만큼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살지 못할 때 창작을 통해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구혜선 감독은 꽤 오랫동안 연기 외 여러 활동을 통해 관객과 팬들과 소통했지만 “하고 싶은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이뤄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때로 허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그녀의 자유를 향한 갈망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주제나 매체의 성격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은 그녀의 생각은 소통 창구의 다양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이전 영화를 소개할 수 있을까, 일종의 플랫폼에 관한 고민이 많다”면서 차기작으로 뱀파이어 이야기를 영화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시나리오집 <마리 이야기&미스터리 핑크>로 엮어내기도 했는데 인간과 공생하는 뱀파이어가 소년의 성장을 지켜보는 이야기로, “<렛미인>(2008) 보다는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쏟아내는 그녀의 열정 그 자체인 <마리 이야기>를 극장에서 볼 날이 머지않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