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2016) 다음에 <우리집>이다. “주변에서 ‘다음 영화는 <우리나라>로 해서 남북 아이들 이야기를 하라’는 삼부작 아이디어도 주더라. (웃음)” 이번에도 초등학생들과 함께다.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이 또 한번, 아이들의 눈높이를 탐구한다. 이번엔 가족 문제다. 가정불화, 경제적 불안 같은 어른들의 힘겨운 상황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고민을 가진 아이들이 만나 서로를 돕고 상처를 감싸주는 연대와 성장담. 지난여름 기록적인 무더위 한가운데서 촬영을 마치고, 믹싱작업에 한창인 윤가은 감독을 만났다.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우리들>의 연작 같은 또 한편의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왔다.
=차기작 고민이 컸다. 대학에 덜컥 합격한 후의 막막한 기분이 들더라. 만나는 감독님마다 붙잡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빨리 다음 작품을 하라”고 하셨다. 씨앗으로 가지고 있던 걸 발전시켜야겠다 했다. <우리들> 편집할 때 생각해둔 이야기였고, 이번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5학년 하나와 3학년 유미가 서로 만나 고민을 나눈다. 4학년 또래 관계에 중점을 둔 <우리들>과는 또 다른 소통의 형태에 접근한다.
=어릴 때 생각을 해보면 동네에서 모여 놀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된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기준 없이. 나 또한 겪었던 일이고 그런 경험을 통해 형제애가 확장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때의 관계를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에 적용시켜보고 싶었다.
-각각의 아이들이 가진 집안 문제를 그들 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른들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묘사하지만 이 세계는 아이들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의 상황으로 생겨난 세계다. 두 아이 각자의 집안 문제가 그 지점에서 그려진다. 덕분에 찍다보니 이야기의 가지도 훨씬 넓어지더라. (웃음) 그 지점이 새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후반부에는 아이들이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선다. <스탠 바이 미>(1986) 같은 성장 모험담도 연상된다.
=<우리들>은 감정적인 이야기라 나름 그 안의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고통을 지울까, 나로서도 아이들이 싸우는 걸 천만번은 봐야 하니 마음의 짐이 컸다. 아이들이 즐겁게 움직이는 걸 보고 싶었다. <우리들>의 아이들보다는 이번엔 본인 의지가 있어서 뭔가 개진하려고 시도하는 아이들, 동적으로 움직이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움직임이 많다보니 리허설을 최대한 빡빡하게 하고 거기 맞춰 콘티 작업을 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필요한 장면들을 추가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좀더 풀어서 열어놓고 찍은 장면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의 재미가 크더라.
-전작의 영향으로 또 어떤 어린 배우들을 발굴했을지 기대가 크다.
=캐스팅은 비슷했다. 일대일로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아갔다. 하나 역의 김나연은 영화 경험은 많지 않은데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유미 역의 김시아(<미쓰백>의 지은 역)는 또래에 비해 성숙한 느낌이라 둘 다 영화와 잘 맞았다. 아이들과의 두 번째 작업이니 좀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해보니 노하우가 없더라. (웃음) 미취학 아동부터 4학년, 6학년, 중학생까지 아우르는 캐스팅이었는데, 국적이 모두 다른 외국인과 작업한 기분이었다. (웃음)
-아이들이 바라본 ‘우리집’의 문제가, 결국 아이들한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업하면서 이야기는 정리됐는데 왜 안 풀리지 싶었는데 그게 가족 문제여서 그랬던 것 같더라. 아이냐 어른이냐를 떠나 결국 이건 가족의 문제를 붙들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 집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각자의 숙제가 있다.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지만 그걸 꺼내 건드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다.
-성장영화라는 점에서 <우리들>은 다른 연출자들에게도 큰 영향과 자극을 준 영화다. 결국 차기작으로 이를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도전이었을 것 같다.
=예상외로 너무 좋아해주셔서, 그게 내 안에서 소화가 안 돼 차기작을 빨리 만들자는 마음이 컸다. 첫 작품이 ‘이것도 영화가 될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면, 이번엔 ‘자기 복제를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스스로의 검열이 있었다. 밥 먹는 신만 찍어도 이게 <우리들>과 겹치지는 않나? 하고 한번 더 고민하게 되더라. (웃음)
<우리집>
감독 윤가은 / 출연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 제작 아토ATO / 배급 롯데컬처웍스 아르떼 / 개봉 2019년 상반기
● 시놉시스_ 5학년 하나(김나연)의 집, 부모님은 다투기 바쁘다. 하나의 소원은 과거 단란했던 때처럼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름방학, 하나는 우연히 3학년 유미(김시아)와 7살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나고 친해진다. 유미 자매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사는 데다가 밀린 월세로 하루하루가 힘겹다. 하나는 그런 유미 자매를 언니처럼, 엄마처럼 보살펴주고 자신도 위안을 얻는다. 그러던 중 집주인의 최종 이사 통보에 아이들은 유미의 부모를 찾아 함께 길을 나선다.
● '성장영화의 어벤저스팀'이 다시 뭉치다_ <우리들>을 만든 제작사 아토ATO 작품으로 프로듀서, 촬영, 미술, 음악까지 <우리들>의 주요 스탭의 참여, 그리고 <우리들>의 배경이었던 주택가 로케이션까지. <우리집>은 <우리들>의 선(최수인)과 지아(설혜인)가 자라던 그곳에서 생활하는 또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이음새’를 찾을 수 있는 영화다. 스탭들 스케줄을 ‘기어이’ 맞췄다는 윤가은 감독은 아토ATO에서 함께했던 스탭들과 다시 만든다는 생각이 차기작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