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 “먼저 만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해라”
2021-06-17
글 : 오진우 (평론가)
사진 : 최성열
크리스티안 키슬리, 제이슨 미텔, 캐더린 그랜트 지음 / 김병철, 신경식 옮김 / 이모션북스 펴냄

<씨네21> 유튜브 채널에 조현나 기자와 송경원 기자가 출연해 영화 평론에 대해 대담한 영상이 있다. 이 영상에서 조현나 기자는 영화를 자기식대로 재구성하는 것을, 송경원 기자는 영화를 보고 자신의 반응을 쓰는 일종의 에세이를 평론이라 말한다. 재구성과 에세이. 이 두 가지 관점을 글로 쓰는 영화 비평에 적용하면 비평은 영화에 물리적 훼손을 입히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이 가능하다. 영화를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든 생각을 손으로 키보드를 쳐서 정리하면 비평이 완성된다.

만약에 영화 파일을 다운받아서 글이 아닌 영상으로 비평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를 훼손하진 않고서는 답이 없다. 이때 마우스는 칼이 되고 영화 파일을 자르고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 및 해체하고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반복한다. 재구성된 영화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패치워크나 콜라주 혹은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새롭게 태어난 영화. 김혜리 기자의 책 제목(<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처럼 영화에 미안한 일을 당신은 할 수 있는가?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는 “먼저 만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해라”라고 조언한다. 크리스티안 키슬리, 제이슨 미텔, 캐더린 그랜트 등 3명의 교수가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2015년, 2017년, 2018년 매년 6월 세번에 걸쳐 미국 버몬트주에 위치한 미들베리 컬리지에서 진행된 영상물 비평 워크숍을 통해 얻은 통찰의 기록이다. 비디오 에세이 작업기, 대담, 저작권 등 비디오 에세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2018년부터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을 혼자서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이들의 워크숍이 부럽고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언어화되지 않는 느낌을 학자들의 정제된 언어로 확인할 수 있어서 상당히 위로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조언은 결국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일종의 권위를 내려놓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워크숍에 참여한다. 이들은 비평하기에 앞서 이미지와 사운드에 대한 감각 훈련을 먼저 익히라 주문한다. 그것이 비디오 에세이의 질료이자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문자 비평에서 글쓰기는 대상인 이미지와 사운드와 분리된 상태로 진행된다. 비디오 에세이에선 그것이 분리되지 않는 상황에 놓이고 언어는 이를 보충하는 역할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책은 비디오 에세이의 방식에 있어 두 가지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하나는 강의나 글에서 볼 수 있는 철저한 예증을 거친 ‘설명적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시적인 방식’이다. 책에선 후자인 시적인 방식을 “가장 강력한 지식 효과를 내는 작업”이라 설명한다. 이 작업은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에서 상상했던 ‘제3의 형식의 글쓰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 이미지는 단순히 비평의 논리에 복무하는 것을 멈추고 그곳에서 해방하여 시적인 의미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은 존재한다. 그것은 시로 읽힐 수 있고 단순한 나열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비평의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다. 학문적 에세이와 비디오 에세이가 서로 반대의 성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2장에서 교수들은 워크숍을 통해 느낀 바를 서로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아 교수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논증 방식이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연역적 방식이었는데 워크숍을 통해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할 때는 귀납적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멜라니 교수는 선형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비선형적 편집 프로그램이 주는 장점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영화 클립을 편집 프로그램 타임라인에 얹혀놓고 서로 상관없었던 이미지를 붙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다. 비디오 에세이에 내재된 우연성과 비선형성이라는 속성 덕분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작업이 학술 논문처럼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크리스틴 교수는 비디오 에세이가 단순히 학술적 글쓰기를 보완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학술 활동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는 영상 비평을 학술 세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학자들의 노력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에세이는 불안함을 수반한다. 이는 비평의 대상이 되는 영화에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영화가 또 다른 영화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를 캐더린 그랜트는 “영화 안의 영화”라 말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비디오 에세이는 이성적인 논문의 모습보다 다분히 감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캐더린 그랜트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비디오 에세이는 “물질적인 사유 실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비디오 에세이의 권위자인 케빈 B. 리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오리지널 영상을 비디오 에세이에 삽입하는 데 이른다. 그는 이것이 “비디오 에세이를 영화의 영역 밖으로 나가게 해서 우리 삶의 공간으로 더 들어가게 한다”라고 지적한다. 또 그는 비디오 에세이를 영화를 ‘재연’(enact)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대상인 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는 위에 언급한 학자들의 노력이 실패할 수도 있음을 드러내는 책이기도 하다. 비디오 에세이는 논문처럼 학계에 발표하는 결과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낳았고 그 모습이 점차 영화로 변화하여 다시 영화관에 영사되기를 기다리는 비디오 에세이는 분석의 결과물이 아닌 대상이 되려 하기 때문이다. 순환 논리에 빠진 듯한 비디오 에세이. 하지만 책은 여전히 만들기를 권한다. 특히나 이것에 대해 말과 글이 많은 한국에선 더욱더 말이다. 다시 기억하자. “먼저 만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