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의 고고학: 20세기의 기억> ,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에 대한 대담
2021-06-17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장 뤽 고다르, 유세프 이샤그푸르 지음 / 김이석 옮김 / 이모션북스 펴냄

“세르주 다네와 나눈 대화에서 당신은 영화가 없었다면 이야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며, 영화에 빚을 졌기 때문에 <영화의 역사(들)>로 영화에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발터 벤야민은 만일 구원해야 할 것이 지금 구원받지 못한다면 완전히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했는데, 당신의 작품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세프 이샤그푸르의 말에 장 뤽 고다르가 답한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 말을 정리하면 장 뤽 고다르는 영화에 진 빚을 갚기 위해(영화 또한 장 뤽 고다르에게 빚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종의 영화를 구원하는 행위로서 100년의 영화 역사를 돌아보는 거대한 프로젝트 <영화의 역사(들)>에 착수했다. 고다르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에 걸쳐 만든 <영화의 역사(들)>는 고다르의 후기 영화를 말할 때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직후 고다르는 비평가 이샤그푸르와 이 영화에 관한 대담을 진행했다. <영화의 고고학: 20세기의 기억>(이하 <영화의 고고학>)은 바로 이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한편의 영화에 관한 감독과 비평가의 대담이라는 형식이나 옮긴 이의 후기를 포함해도 200쪽이 넘지 않는 책의 분량을 생각하면 콤팩트한 영화 해설서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의 역사(들)>가 품고 있는 방대한 의미와 실험적 시도를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영화의 역사(들)>엔 온갖 예술과 철학이 인용되어 있는데, 고다르가 영화를 완성한 뒤 이샤그푸르와의 대담을 자처한 이유도 영화의 비평적 의미를 제대로 짚어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만남은 고다르가 당대 활동 중인 비평가 중에서 영화, 철학, 사회학을 두루 연구한 이샤그푸르를 지명함으로써 성사된 것이다.

고다르와 이샤그푸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기 전 이상적으로 선행해야 할 일은 <영화의 역사(들)>를 감상하고 살피는 것이다. 총 8개 장으로 이루어진 4시간 분량의 이 영화를 요약하면 고다르가 영화로 써내려간 영화사다. 언급했듯 이 영화엔 수백편의 영화, 책, 회화, 사진 등이 인용된다. 특정 영화에서 발췌한 이미지가 포개지며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가 만들어지는 식으로 고다르의 영화사가 완성된다. 이를테면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의 한 장면에 프리츠 랑의 <단 한번뿐인 인생>의 한 장면이 포개지면서 원본의 맥락과는 다른 제3의 이미지와 의미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빅토르 위고, 발터 베냐민, 미셸 푸코, 앙드레 말로, 보들레르, 보르헤스 등 위대한 작가들의 글도 다양하게 인용된다.

영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기본 재료가 영화인 것은 “오직 영화만이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거대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유세프 이샤그푸르)라는 인식 때문이다. 회화나 음악이나 문학은 인용과 몽타주만으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라는 두개의 변별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축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다르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소품 코미디영화라 할지라도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은 시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시대의 은유입니다. 영화의 질료는 그 자체로 은유적이며, 영화의 리얼리티는 이미 은유적입니다.” 성실하고 섬세한 고고학자처럼 영화 이미지를 발굴, 수집해 영화라는 예술과 한 시대를 해석하는 고다르의 작업은 한편으로 이미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을 읽게 해준다. 이샤그푸르의 표현처럼 고다르에겐 “개념의 질서”가 아니라 “이미지의 질서”가 중요하다. 고다르는 말한다. “나는 이미지가 우리로 하여금 덜 말하게 하면서도 더 잘 말하게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영화의) 역사에서 고다르가 중요하게 인식하는 큰 사건에는 홀로코스트와 할리우드의 탄생이 있다. 고다르는 나치즘의 시대에 영화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또한 사유하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오락으로서의 영화에 점령당한 것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한 시대를 상징하는 감독”으로서 히치콕의 업적에 존경을 표한다. “히치콕이 7~8편의 완벽한 영화를 잇달아 만들어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들은 상징적입니다. 그 작품들이 영화 자체를 확장시켰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화만의 가능성, 영화의 역할, 영화의 책임을 언급하는 고다르의 태도에는 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회의가 동시에 느껴진다. 고다르는 말한다. “영화는 19세기적인 개념이며, 한 세기를 구현하고 사라졌다”고. 나아가 20세기에는 19세기에 발명된 기술의 “적용만 있었을 뿐 발명은 없었다”고. 이 말은 지난 세기의 영화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세기의 영화를 맞아야 한다는 말과 조우한다. 이쯤에서 상기할 건, 고다르와 이샤그푸르의 대담이 1998년 11월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세기의 끝 무렵 고다르의 시선은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영화로 향해 있다. 어쨌거나 “영화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고다르의 믿음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다만, 쉽지 않은 번역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지만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말의 뉘앙스, 언어의 다층적 의미, 문맥의 빈틈을 모두 간파하기는 어렵다. 고다르의 영화만큼 적극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책이다.

<영화의 역사 (들)>의 전체 구성

1(A) <모든 역사(이야기)들>(Toutes les histoires, 1988) 51분

1(B) <단 하나의 역사(이야기)>(Une histoire seule, 1989) 42분

2(A) <오직 영화만이>(Seul le cin ma, 1997) 26분

2(B) <치명적인 아름다움>(Fatale beaut , 1997) 28분

3(A) <절대의 화폐>(La monnaie de l’absolu, 1998) 27분

3(B) <애매한 소식(누벨바그)>(Une vague nouvelle, 1998) 27분

4(A) <세계의 통제>(Le contr le de l’univers, 1998) 27분

4(B) <우리 사이의 기호들>(Les signes parmi nous, 1998)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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