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 로메르에 대한 진실의 지표
2021-06-1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사진 : 최성열
앙투안 드 베크, 노엘 에르프 지음 / 임세은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에릭 로메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도덕과 계절의 연작, 비극보다는 희극, 영화 애호가이자 비평가였던 그를 생각한다. 우리에게 로메르는 도덕과 욕망의 순례자였고, 예술적 호기심의 다양성 자체였다. 그의 작품이 주는 단아하고 가벼운 리듬과 심오하고 낭만적인 문체는 그를 ‘현대적이고 문학적인 연출가’로 완성시켰다. 그러고 보니 그 어떤 정보도 영화의 바깥쪽을 가리키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그가 무슨 에피소드를 지녔는지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를테면 마리 리비에르, 아리엘 돔바슬, 로제트, 파스칼 오지에와 같은 여배우들과 그의 필모그래피를 연대기적으로 연결해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의 면면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전기가 발간된다는 소식은 놀라웠다. 로메르가 자신의 글쓰기 전략을 어떻게 숨겼으며 스스로의 흔적을 지웠는지를 설명하는 진실의 지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자인 앙투안 드 베크와 노엘 에르프가 집필에 뛰어든 계기는 ‘아카이빙 자료’의 존재였다. 2010년 1월 로메르가 숨지기 직전에, 그는 자신이 가진 자료와 영상들을 IMEC(동시대 출간 기념회)의 파리 사무소에 위탁하기로 결정했고, 그리하여 그의 사후에 140여개의 박스가 노르망디의 도시 캉에 위치한 IMEC 협회의 본관으로 이전됐다. 12세기 수도원 건축물을 재건축한 그곳의 자료실에서 한동안 이들 수집품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일부 평론가들과 학자들이 1994년에 방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이들 문서의 내용을 추측했지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아카이브 자료에 그가 만든 영화의 다양한 시나리오 버전이 속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고, 학창 시절 로메르가 작성한 노트가 다수 존재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빛의 환상에 둘러싸인 듯, 로메르는 숭고한 영화감독의 영역에서 오직 영화만을 통해 언급됐다.

가장 먼저 아카이브 자료에 접근할 권한을 얻은 이는 앙투안 드 베크였다. 이후 그는 노엘 에르프에게 연락했고, 두 사람은 함께 캉의 보관소로 향했다. 그들은 로메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먼저 연도별로 분류했다. 하지만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집필 계획은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1969년작인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원작 소설이 1944년에 작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비행사의 아내>(1980)의 원류 격인 단편소설이 1946년에 처음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필모그래피 순서로 기술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로메르의 본명인 ‘모리스 셰레르’가 남긴 자료들에 의해, 그가 감독 ‘에릭 로메르’가 되어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따라서 비교적 사적인 시간의 흐름에 몰두해서 본문 내용이 진행된다. 이를테면 영화 <클레르의 무릎>(1970)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1970년 즈음에 적힌 ‘네편의 도덕 이야기’ 분량을 찾아서 읽어야 하고, 더불어 1949년 12월 5일에 그가 ‘질베르 코르디에’라는 가명을 사용해서 작성한 단편소설의 집필 과정도 함께 찾아야 한다. 저자들은 최대한 의견을 배제한 채 감독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14년에 온전히 예술가 중심의 전기가 탄생했다.

흥미로운 반전이 이 과정에서 몇몇 발견된다. 비록 로메르는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비평가로서 그가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비평가로서 그는 앙드레 바쟁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이른바 ‘히치콕 논쟁’을 포함해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자로서 그는 <포지티프>와 구분되는 잡지의 정체성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책은 편집장의 자리에서 물러날 당시의 그를 이렇게 적는다. “어느 날 로메르씨는 쫓겨났다”고. 자크 도니올 발크로즈의 이러한 언급은 다소 복합적이지만 독자로서는 충격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서서히 그에 관한 선입견이 사라진다. 로메르가 남긴 여러 연작들 대신에, 중요한 것은 그가 추구한 ‘교육자’로서의 면모와 상상력 없는 ‘남자’적인 취향임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자신이 감독이란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그가 보호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실패’하고 ‘구체적 변형’을 거쳤던 그가 그럼에도 특유의 ‘독일식 취향’이나 ‘페르스발’에 관한 연극적이고 회화적인 방식을 중요시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영화 <갈루아인 페르스발>(1978)을 떠올린다. 이 책은 로메르가 택한 교육적인 노선이 그의 작품이 지닌 희극적이고 혼동스러운 관습의 발아 지점과 겹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빚어낸 선하고 빛나는 ‘고립’이 ‘로메르적인 것’의 기원이며, 또한 사적이고 미학적인 고집이 사회가 아닌 스스로에게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메르는 진정한 ‘개인주의자’일 것이다.

한결같이 우리의 생각은 기존의 로메르로부터 벗어난다. 그의 대표작이 담은 자연과 사실의 요소들, 젊음의 순간적 아름다움, 명쾌함과 지적인 뉘앙스가 전부가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집필됐고, 로메르가 숨긴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마치 본인이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로메르는 자신의 일부를 드러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의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단 하나의 예술 영역이 ‘영화’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메르는 늦깎이 데뷔를 했고,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으로 보이는 프랑스영화의 견본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어린 모리스가 사촌들과 함께 연극을 했고, 진지하게 대사를 연기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 저작은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이며, 또한 독창적인 로메르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는 온갖 호기심에 휩싸인 모습으로, 모순을 가진 채 살았다. 그런 탓에 우리는 잊힌 그의 텔레비전 연출작을 찾아보아야 하고 사라져버린 필름을 되살려야만 한다.

두꺼운 표지 때문인지, 음울한 흑백사진 때문인지, 책의 첫인상은 지나치게 고전적이었다. 게다가 모리스 셰레르라는 생소한 이름이 프루스트의 구절인 양 생경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소설 속 ‘마들렌’을 대하듯 천천히 ‘클레르’의 안시 호수를 떠올렸고, 비아리츠 바닷가의 ‘녹색 광선’을 상상했다. 개인적으로 캉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났던 노엘 에르프의 이름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한 학기 내내 그가 열정적으로 소개했던 ‘시적 리얼리즘’의 리듬과 로메르의 클래식한 취향이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비자발적인 기억을 소환해내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 “작은 마르셀은 작가가 되었다”를 떠올리며 “작고 성실한 셰레르는 영화감독이 되었다”라고 적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의 영역을 로메르는 순간의 예술로 포착하는 작가였다. 이제 로메르에 관한 “깨지기 쉬운 로즈버드와 비슷한 어떤 것”들은 더이상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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