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온 후에 오랜 시간 영화를 생각하는 사람을 시네필리아로 정의한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이야말로 가장 많은 시네필을 만들어온 감독이다. 그의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관객은 복잡한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혹은 모호한 타임라인을 정리한 누군가의 정밀한 분석을 찾아다니며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감독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촬영 비화를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대중적인만큼 그의 영화를 규정하는 몇 가지 키워드에 사로잡혀 오인하기 쉬운 감독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미·영 영화학자들의 글 17편을 수록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그의 작품을 각기 다른 렌즈를 투과해 조망하며 그간 간과됐던 시야의 사각지대를 들춘다. 해당 영화의 관련 스틸 등이 없이 비평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힐 책은 아니다. 17편의 글에는 서로 중복되는 논의도 서로 상충되는 주장도 결론으로 가기 위한 비약도 이따금 밟힌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네마를 바라보는 17개의 프리즘은 중첩과 소거에 의해 결국 독자 각자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게 도와줄 것이다. 더 나아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팬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작가 감독을 분석하는 다양한 틀을 엿볼 수 있다.
“리뷰를 통한 작가의 발전: 크리스토퍼 놀란을 둘러싼 비평”은 그의 초기 세 작품, <미행> <메멘토> <인썸니아>의 리뷰를 분석한다. 리뷰에서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먼저 독자를 설득한 후, 첫 장편영화부터 감독의 이름이 자주 호명됐던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일찌감치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이며 이후 그가 대표적인 작가 감독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이런 리뷰들이 도움을 줬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시네필리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의 아이맥스”는 기술과 시네필 문화를 연결한다. 특정한 설비의 상영 시설이 필요한, 시각적 지형적으로 구별되는 영화 기술이 시네필리아의 영화 관람을 특별하게 만들고 화면비 변화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을 끌어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필름과 아이맥스에 대한 집착은 그가 반복적으로 언급했듯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그의 영화 내에서 특정 영화가 언급되거나 영화 문화가 묘사되지 않는 것, 메타-영화적인 이미지가 없는 것 역시 관객의 몰입 경험을 해치지 않기 위함이라 해석하는 글이 있다. 대신 그의 영화에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메타포가 흥미로운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인셉션>과 <프레스티지>에 나타난 놀란의 몰입도 높은 영화 제작 알레고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마술적 환상이 어떻게 직조되는지, 관객을 속이는 사기꾼 영화로서 분석한다.
때문에 <인셉션>의 꿈꾸는 자들과 <프레스티지>의 마술사가 속임수를 행하는 게 아니라 영화의 속임수가 이들을 경유해 보여질 뿐이다. 속기를 원하는 관객의 욕망은 “계속해서 스스로 뭘 알고 있는지 되뇌는데, ‘네가 믿고 있는 건 뭐지?’ :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속 문화적 스핀, 퍼즐 영화 그리고 마인드 게임”에서 보다 확장되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에서 더블의 사용”은 단일성에 대한 판타지를 공제적·시뮬라크라적 해석으로 연결시킨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여성 캐릭터의 납작한 활용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성자, 죄인 그리고 테러리스트: 크리스토퍼 놀란의 고담의 여성들”은 <다크 나이트> 3부작이 메타 텍스트적 전복을 통해 여성들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다. “<메멘토>의 포스트모던 누아르 판타지: 장소, 가정 그리고 젠더 정체성” , “위기의 남자들: 크리스토퍼 놀란, 거짓, 허구화된 남성성” , “트라우마를 드러내기: 놀란의 새로운 밀레니얼 영화 속 비탄, 기억상실 그리고 트라우마적인 기억” 등 세편의 글은 놀란의 남성 캐릭터로 각을 좁힌다. 그들을 필름누아르의 남성 캐릭터 계보에 놓거나, 반영웅이 남성성 위기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거나, 트라우마로 인한 좌절된 남성성의 심리 치료 과정으로 읽는 이 글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젠더 비평의 저변을 통시적으로 확장한다. 놀란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분석은 “슈퍼히어로에 걸려 넘어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승리와 절충”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가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방식은 “범죄 현장을 다시 방문하기: <인썸니아>와 억압된 것의 귀환”에서도 제시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는 결국 시간의 순행이란 거스를 수 없는 진리를 전복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다양한 분투로 정리될 수도 있겠다. 기억의 재조립을 통해, 우리가 아는 기존의 물리법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시간이란 안타고니스트에 저항해온 궤적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아티클을 읽고 싶다면 “‘꿈이 그들의 현실이 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와 <인셉션>에서 영구적인 퇴행”이나 “또다시 시간에 관하여: <인터스텔라>부터 <미행>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간 여행에 대한 계속되는 집착”, “끝이 안 보임: <미행>의 실존주의적 일시성”이 독자의 갈증을 해소해줄 것이다.
내러티브 연구 텍스트로서 이 책에 참여한 영화학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메멘토>였던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퍼즐영화 가운데 <인셉션>이 가지는 불일치”, “<인셉션>의 비디오게임 로직”은 퍼즐영화이나 비디오게임의 논리 체계 속에서 그의 내러티브를 해부하는 시도다. 내러티브 사건을 전달하는 영화의 기호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가 있다. “꿈에서 음악 듣기: 놀란의 <인셉션>에서 음악의 기호적 역할에 대해”는 두 시퀀스를 쪼개어 기호학과 음악 단위별로 신의 의미를 매칭하는 도식적인 분석을 시도한다.